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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차마 견딜 수 없는 마음 깨워

백산심론(百山心論) 3강 8장 28산 지리산 천왕봉

by 여의강


지리산(1915m)을 다녀왔습니다.


국립공원 사이트 소개된 16개 코스 중 하나인

거림에서 연하선경 거쳐 천왕봉 오른 뒤

중산리로 하산하는 '거림코스'로 길을 잡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출발,

검은 계곡과 새벽 능선 7시간 올라 정상 닿았고,

끝없이 내리 꼽는 태양길 바윗길 4시간 견뎌낸

장장 11시간의 산행이었습니다.



지리산 산그리메


그럼에도

산과 산 겹겹이 둘러싸여

크고도 높고도 넓고도 깊은지라


그저 지리산 한 모퉁이

잠시 스쳐지나온 느낌입니다.



산 겹겹


젊어

함부로 오르던 지리산


'행여 견딜만하면 오지 말라'

는 시인의 말 따라


차마 견딜 수 없는 마음 깨워

기어이

천왕봉 세웠습니다.



천왕봉 직전


지리산(智異山)'의 智異는

'다름을 알고, 차이를 알고,

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지요.


산이 좋아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민족의 영산이자 이질적 문화를 가진 동과 서가 서로 만나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지리산은 1967년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경남 하동, 함양, 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둘레가 320여 km나 되고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지요.(네이버)



산 나무와 죽은 나무


2200 사당역

지리산 무박산행 위해

과 OB 4명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거림탐방센터에서 세석대피소와

촛대봉, 연하 선경 거쳐

장터목산장 지나 제석봉, 천왕봉 오르고

법계사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는 대종주코스입니다.


바쁜 하루 보내고

간신히 시간 맞추어 차 탔습니다.


쾌적한 28인승 리무진이지만

야심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맹숭맹숭하니 잠이 잘 오지 않더군요.

4시간 남짓 자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도착안내 나옵니다.



천왕봉에서


0220

경남 산청 거림 들머리

비몽사몽 덜 깬 상태

칠흑 같은 어둠에 사방 분간 어려워

헤드렌턴 키고 장비 챙기며 어수선한 출발 준비합니다.


언뜻 우러른 하늘

수많은 별들 쏟아져내려

북두칠성 손에 잡힐듯합니다.



거림탐방센터


검은 숲

두려움과 설렘으로 들어서니

물소리 숨소리 따라옵니다.


'이 시간에 산을 오르다니'


하루 넘겨 열심히 산 이들 뿌듯함 넘칠 보람의 시간

4차 갈까 집에 갈까 망설이는 술꾼들의 시간

오링당한 갬블러 한숨짓는 절망의 시간


'잠도 못 자며 이게 모하는 짓일까'


피곤한 생각도 잠시,

심산유곡에서 자칫 사고당하거나 길 잃지 않으려

마음 다잡습니다.


무조건 땅만 보며 걸을 수밖에 없기에

오히려 등산에 집중할 수 있더군요.


보이진 않으나

흐르는 계곡물 굉음은

압록강 건너던 연암의 열하일기 소환합니다.



검은 숲


한 시간 이상 깜깜한 산길 지나

천팔교와 북해도교 만납니다.


끝 모를 암흑의 늪에 빠져

허공 떠가듯

어둠 속 유영하듯

2시간 반 오르니

여명 밝아오며

길의 윤곽 잡아갑니다.


맨눈으로도 보인다는 것이 이리도 반갑더군요.



여명의 숲길


0530

세석 대피소

하늘에 이미 붉은 기운 돌아

촛대봉서 일출 보려던 계획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잔돌 많아 이름 붙여진 세석(細石),

1600 고지 위치한지라

차갑고 매서운 새벽바람에 옷깃 여밉니다.


간식으로 휴식 취하고

장비 추스른

철쭉 유명한 세석평전 지나

촛대봉으로 향합니다.


세석에서 촛대봉으로



0620

아직 진달래 한창인 촛대봉

세찬 바람 너머

겹겹이 이어진 산그리메

끝도 없이 이어져나갑니다.


가야 할 연하봉과 제석봉,

정상 천왕봉

운무에 가려 신비함 뿜어내고

노고단 반야봉 능선

구름 함께 아스라이 펼쳐나갑니다.



촛대봉 풍경



앙상한 고사목,

붉은 진달래, 보라색 얼레지

능선 따라 찬바람 맞으며 오르내립니다.


'견딜 수 없다

견딜 수 있다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


두 마음 오가는

산의 한가운데


산을 향해

산을 걷습니다.



고사목, 진달래와 얼레지



0730

운무 자욱한

봉과 봉 사이

연하선경


일출봉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연하봉,

산꾼들 별밤 정취 물씬거렸던 야영장

장터목 대피소 들어선 후

연기와 신선만 노니는 곳(烟霞仙境)되었습니다.



연하선경


연하선경 너머


천왕봉 구름 속에 있고

좌우 한적한 풍경

연하봉 가는 작은 오솔길

한데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 만들어냅니다.



연하선경 지나며



0800

장터목 대피소


꿈길 걸어온 몸 녹이며

명품 샌드위치로 힘 돋아 정상 향합니다.


700m 올라 제석봉 닿으니

거친 바람과 짙은 운무

꿈틀거리는 푸른 산

곰탕 속 나타났다 사라지기 반복합니다.



장터목에서 제석봉으로



정상 앞둔 가파른 암릉길


통천문 지나

아련한 경치 취해

바위 흘러내린 아찔한 너덜길 네발로 기어오르니

안갯속 천왕봉 위용 드러냅니다.



천왕봉 가는 길


0940, 출발 7시간 20분 경과


천왕봉에 섰습니다.


견디지 못한 마음 함께 세웠습니다.


거친 바람 휘몰아치는

혼돈의 정상


몸이 웃습니다.

마음이 따라 웃습니다.


이제 한동안 견딜 수 있겠지요.



천왕봉


까마득한 절벽

아스라한 허공

흰색 커튼

바람 따라 일렁입니다.


곱고 푸른 산그리메

수줍은 듯

잠깐잠깐

속살 드러냅니다.


강풍과 추위

햇빛과 따듯함

절망과 희망

하나 되어 출렁입니다.


견디지 못한 마음

단단한 다짐으로 펄럭입니다.



천왕봉에서


한참을 머물다 내려오는 길

운무 속 오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햇살 쏟아지는

깎아지른 울퉁불퉁 암릉길


훤하게 트인 시야


흰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마음 함께 떠갑니다.



중산리 하산길


1140

개선문 지나 깎아지른 내리막 암릉길

구름에 취해 연두에 취해

허공 걷듯 허우적거리며

법계사와 로터리 휴게소 닿습니다.


중산리 가는 길이 둘로 나뉩니다.

길지만 편한 길

짧지만 험한 길



법계사


험하지만 짧은 칼바위길 택했지만

천왕봉 보인다는 망바위 지나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뾰족뾰족 바위길


허벅지와 종아리는 버텨도

무릎과 발목 삐그덕거립니다.

기계 연결부위가 먼저 망가지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플 때까지 가면 안 된다'


흙 한 줌 딛기 힘들어 전혀 쿠션 없는 길

조심조심 발 옮깁니다.



돌투성이 하산길, 망바위


통통통 앞질러가는 젊은이들

하릴없이 바라보며


길고도 긴 돌길 4시간 내려

맑은 태양 계곡물 넘쳐흐르는

중산리 탐방센터 닿습니다.



중산리탐방썬터


서울 오는 버스에서 깊이 잠들었고


개운한 몸으로 나누는

지리산 담은 소주가

말죽거리 족발과 함께 달디달게 넘어갔습니다.



촛대봉에서


*2022년 5월 6일 출발 무박 종주하였습니다. 맑고 청아한 날이었지만 산 위는 춥고 바람 불고 운무 가득했습니다.

*거림탐방쎈터~세석대피소~촛대봉~연하선경~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법계사~로터리휴게소~칼바위~중산리탐방쎈터 총 16km 11시간의 힘들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



등반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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