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휘봉에서

가을 단상

by 여의강


입석마을

들머리 과수원


사과가 터진다

달콤한 향

가득





길이 아닌가?


디딜 곳 없네

견뎌야 할 날처럼


온통

떨어져 누운 잎


젊어

죽인 시간들


낙엽 되어 밟히고


길 아닌 길

더듬어 가네



사그락

푸르락

숲의 노래


아프면

소리라도 내야 하나

그리 하면

좀 나을까?





숨이 올라온다

하루 잘못 살아

깨어진 루틴이

다릴 잡네


단련도 다짐도

세월은 못 잡으니

그저

본전이면 감사





구름 딛고 오른

악휘봉(樂峰)


산맥의 파도

풍류로 빛난다


덩그러니 표석 하나

무심한 그림자 하나





하늘만 있네

바람만 있네


지나온 시간

사라졌고


오르지 못할

내려야 할 길만 있네





마음만큼 안 되겠지

기력 다하고

날 저무니


그저

한 발짝씩만


올라온 길만큼

내리는 길 더 험하니





풍상 견딘

꼿꼿한 선바위

지친 세워준다


고고하다

도도하다

쓸쓸하다





택하지 않은

가지 못한

갈림길 하나

백두대간 향해

멀어진다


그런 길

많이 있었다


그런 길

많이 보냈다





아찔한 내리막

소원바위

간절함 모여 있다


무슨 소망

저리 많을꼬


어떤 바람

예까지 들고 왔나





마분봉 갈림길 안부(部)


오르는 자나

내리는 자나

생각을 쉬어가는 곳


리본이 날린다

상념이 날린다

다짐이 날린다


두려움을 날린다





70분 거리라지만


마음은

은티마을 주막집

찌그러진 주전자


가득 채운

막걸리 잔 앞에

먼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