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그대 아픔 가슴에 담아

百山心論 1강 4장, 네山 방태산

by 여의강


그대 아픔을 헤아립니다

심란할 마음과

복잡할 심경을 생각합니다


온전히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기에

온전히

달래줄 수 없는 상처이기에


그저

그 아픔 가슴에 담아

지켜보며 아파합니다



방태산 능선



방태산(1444m)을 다녀왔습니다.


산불방지로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입산 통제되는 방태산을 가자는 번개가 왔습니다.

고교동기이자 백산 대학 70회 전후의 까마득한 선배 3명과 함께했습니다.

0650 종합운동장역에서 친구의 차로 출발했습니다.

1명은 2번째, 2명은 처음 얼굴을 트는 친구이지만 고교동기이기에 오랜 지기(知己) 같았습니다.


내린천 휴게소의 날씨는 매우 차가왔습니다.

정보상으로 산의 날씨는 체감 영하 18도였습니다.


방태산은 사방으로 긴 능선과 깊은 골짜기를 가진 강원도 인제의 육산입니다.


영어 초성이 재미있게도 BTS이고,

한자로는 꽃다울 방(芳)에 별 태(台, 삼태성의 태)이니

'꽃다운 별 같은, 꽃다운 별이 피는 산'인가 추측해보았습니다.


방태산은 국내 최대의 자연림을 갖고 있는

희귀 동식물의 보고랍니다.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 3재(: 물, 불, 바람)를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이곳 산골의 '3둔 4가리'(7개 지명으로 '둔'은 산중 산기슭의 평평한 땅을 말하며 사람 몇이 숨어 살만한 곳의 의미로 '살둔, 달둔, 월둔'을, '가리'는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땅으로 한나절 밭갈이를 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데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를 칭한답니다)를 꼽을 정도로 깊고 깊은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해 있는 산입니다.


주걱을 닮은 주억봉과 구룡덕봉, 매봉령을 주봉으로 북으론 설악산, 남으론 오대산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본 주억봉과 구룡덕봉


0920 휴양림 제1주차장에 도착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출발했습니다.

마당바위를 지나 얼어붙은 '2단 폭포'와 그 안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장관이었습니다.

위쪽은 '이 폭포', 아래쪽은 '저 폭포'라는

위를 기준으로 한 재미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이폭포와 저폭포로 이루어진 2단 폭포

제2주차장까지 약 2km의 포장도로를 지나 등산로가 시작되는 거대 삼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깊게 쌓인 눈 사이로 조릿대들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주 자연림인 피나무 박달나무 참나무류는 모두 잎이 져서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인공으로 조성된 수십 m 곧게 뻗은 멋진 낙엽송 군락이 하늘을 빽빽이 가리고 있었습니다.


등산로 초입


숲엔 눈이 쌓여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고

울창한 숲 사이로 아기자기한 눈길이 이어졌습니다.


콕 슈우욱 뽀드득뽀드득

슈우욱 뽀드득뽀드득


스틱 찍는 소리, 바스켓이 눈에 파묻히는 소리,

눈 밟는 소리가 조용한 숲 속에 리드미컬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계곡물이 넘쳐 군데군데 얼음길이었고,

이름 모를 짐승의 발자국이 자주 보였습니다.



숲 속의 눈길과 얼음길


편안한 숲 속 눈길을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800 고지에서 900m만에 600m 고도를 올려야 하는, 주억봉과 구룡덕봉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태산준령 험한 고개입니다.

언뜻언뜻 주능선이 보이고 고사목들이며 기기묘묘한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심산의 아름다운 숲길이지만 어마 무시한 경사에 숨이 가빠옵니다.


백산 선배들은 저만치 갔지만, 기왕 늦은 김에 양해를 구하고 사진도 충분히 찍고 경치 감상도 넉넉히 하며 천천히 오릅니다.


능선을 향해 오르는 쎈 오르막


한참만에 열린 능선의 청아한 하늘이

코발트블루로 빛났습니다.

먼저 온 친구들이 반기며 짐까지 받아주었습니다

장뇌삼과 백고동, 육포와 곶감으로 눈밭에 차려진 주안상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산음식에서도 고수의 진면목이 보였습니다.

컵라면과 소주 한잔에 몸을 녹이고 배낭을 한 군데 모아놓고 하늘길을 걸어 정상을 향했습니다.


코발트블루 스카이와 주억봉 가는 하늘길


바람이 없고 해가 좋아 그리 춥진 않았습니다.


설악의 귀때기 청봉 대청 중청 소청과

오대산의 비로봉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

좌우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방태산의 주억봉과 구룡덕봉, 매봉령 사이론

쌀을 이는 조리처럼 생긴 능선들이 둥글게 주름지어

계곡을 감싸고 모여들어 아늑하고 편안한 지형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의 산하'에 따르면,

정상 근처에 대홍수를 대비하여

수작업으로 돌에 구멍을 뚫어

배를 떠내려가지 않게 묶었던 암석인

'배달은 돌'의 흔적이 있었다 하고,

흙과 모래 사이에서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었다 하니 신비할 따름입니다.


주억봉 정상


구룡덕봉 가는 능선은 약간의 오르내리막으로

설악과 오대산 줄기를 양옆으로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편안한 풍경이었습니다.


좌우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도 설치되어있었습니다.


구룡덕봉과 매봉령 가는 길, 멀리 설악과 오대산 줄기


매봉령부터 급하락이 시작되었지만,

눈이 많이 쌓여

오히려 편안한 방충 작용을 해주었고

점핑 보드를 타는 듯한 재미까지 더했습니다.


매봉령에서 급 내리막


군데군데 함부로 누워있는 고사목이며

엉클어진 넝쿨들이 아리랑의 한 구절을 소환했습니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 돌아서

불원천리 허덕 지덕 허위단심

그대 찾아왔건만 보고도 본 체 만 체

돈담무심(頓淡無心),...'


내리막의 고사목,괴목


특히 주왕산 주산지를 배경으로

업보와 집착, 욕망과 번뇌, 윤회를 그려낸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브금으로 깔리는 '강원도 아리랑'의 처절한 영상이 오버랩되어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https://youtu.be/G-uF7MuzqHc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중에서


경사 끝에 온화하게 이어지는 눈길이 따사롭습니다.


낙엽이 지는 소나무란 뜻의 '낙엽송' 끝에 걸린

늦은 오후 햇살이 눈부십니다.

사그락 사그락 눈 밟는 소리가 계속 따라옵니다.


계곡은 얼어있었지만,

그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했습니다.


조릿대, 낙엽송과 얼음계곡


1630 하산하여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생소한 세계를 엿보게 한 친구들과의 대화가 즐거웠고

소주잔을 함께 나눈 마무리가 정겨웠습니다.


멋진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겨울 소풍이었습니다.



그대 아픔

눈물이 되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면

함께 울겠습니다


그대 아픔

덜어내어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다면

내 가슴 한껏 열어 놓겠습니다


그대 아픔

가슴에

모두 담아가겠습니다



*2022년 1월 30일 올랐습니다.

*산중 날씨는 찼지만 청아했습니다. 방태산 휴양림 제1주차장~제2주차장~아랫삼거리~윗삼거리~주억봉~구룡덕봉~매봉령~아랫삼거리~원점회귀의 약 13km 7시간의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