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바람을 뵈옵니다' 1

#세상의 이치를 묻다

by 여의강

‘정말 멋지구나~’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가파른 경사를 오르던

Y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감탄을 토했다.

‘침묵의 얼굴 바위’,

꾹 다문 입술, 고뇌에 찬 표정의 사내가

경사진 너른 암릉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오전 자운암을 오르다 보면

통상 연주대 위의 태양을 마주 보아야 한다.

그렇게 주로 역광으로 보이기에

더 위엄을 자아내는지도 모르겠다.


‘골프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몬주 알아?’


과감한 퍼팅으로 버디를 잡아 기분이 좋아진 J선배가

캐디에게 퍼터를 건네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홀을 지나지 않은 공이

홀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거지,

퍼터는 반드시 홀을 지나치게 쳐야 한다는 거야,

후후,

마찬가지로 지난 것은 절대 돌이킬 수 없어,

돌아보고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며

그저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지.

물론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뼈저린 반성이 함께 해야겠지만. ‘


당시 잘못된 투자로 큰 손실을 보아 괴로워하던

Y에게 위로 삼아 건넨 이야기였다.


잠시 얼굴바위의 모습으로 상념에 잠겼던 Y는

다시 거친 바위를 오르기 시작한다.


다양한 형태의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떡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성한 수염으로 감싼 도토리가 열린 후에야

유사한 모양의 신갈나무와 뚜렷이 구분된다.

신갈나무는 오래 걷고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 바닥에 깔고,

떡갈나무는 떡을 만들 때 들러붙지 않게 하거나

떡을 싸는데 긴요하게 쓰였다고 한다.

노간주나무도 가지치기를 해준 것처럼

여기저기 정원수처럼 곧게 서 있다.

어린 가지의 탄력이 좋아 소의 코뚜레로

사용했다는데 향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왕관이며, 자라며, 남근이며 신기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주 발길을 잡는다.

누군가 얼굴에 붉은 눈까지 그려 넣어 토끼를

꼭 닮은 ‘토끼 바위’까지 올라 한숨을 돌린다.


‘돌이킬 순 없더라도,

뼈아픈 반성이 부족했던 것인가?’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실수는

Britney Spears의 'Oops! I did it again.',

그 자체였다

이어지는 손실로 더 큰 타격을 입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Y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삐죽한 송신탑과 축구공 닮은 기상 관측소가

정상으로 보인다.

뒤돌아보면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낮게 누워 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빼곡한 도심이

멋없이 흐트러져 있다.

한강과 남산, 북악산과 안산,

63 빌딩과 롯데타워가 지척에 보인다.

좁은 길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댄다.

멀리 북한산 비봉능선과 도봉, 수락, 불암산도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배산임수의 멋진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저기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성공하고 그랬는데도 실패하고,

누군가는 자빠져 자고

그럼에도 성공하고 그래서 실패하겠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노력?, 실력?, 운?, 운명?,

출발점?, 결정?, 타이밍?, 시류?, 관계?


그걸 모르니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희망하며,

각자의 기준으로

얽히고설켜서 돌아가고 있는 거겠지.'


우측 아래로는 숲에 가려진 주 등산로인

도림천 계곡이 흐른다.

그 너머 학바위, 버섯바위 능선이 만나

정상인 연주대를 향하고,

뒤로는 8봉 능선이 넘실댄다.

관악과 함께 뻗어있는 삼성산 주 능선도

손에 잡힐 듯하다.

항공로인 하늘에는 자주 비행기가 떠간다.

좌측에는 수영 능선이 거칠게 솔봉을 향해 오르고,

멀리 낙성대와 사당 능선이 이어져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렇게 좋은 산들을

오를 수 있는 도시는 서울밖에 없을 거야.'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의 말이었다.


관악의 자운암은 Y가 자주 오르는 등산로이다.

가파른 암릉으로 이어져 중간중간

손발까지 써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이지만,

능선에서 펼쳐지는 확 트인 정경에 매료되어

벌써 수십 번을 올랐다.

처음엔 10번 이상 쉬면서 정신없이 헉헉댔지만,

이제는 쉬지 않고도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더구나 꽃과 나무를 공부한 후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이름과 얼굴 정도는

트고 지내는 지인처럼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IoT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산객으로 북적이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코뿔소 바위와 국기봉을 지나 글러브 바위 옆

암벽에서 젊은이들이 자일을 타고 있다.

그들의 두려움 모르는 몸짓들이

한때 설악산과 지리산 등 전국 명산을 종주하며

백두 대간을 꿈꾸었던 Y의 가슴을 뛰게 한다.

빨래판 바위를 지나 마지막 9부 능선을 오르는 사이.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가파른 바위틈에

신기루처럼 노란 꽃이 납작 피어있다.

밤이슬과 안개를 먹으며,

그리움을 꽃말로 자라는 돌양지꽃이다.


정상부의 소나무 한그루,

온갖 풍상 견디며 허공을 휘둘러 서 있다.

그 그늘 아래 앉아 다시 뒤를 돌아본다.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Y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