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횟집을 나온 K와 M은
긴 시간 함께 바다를 걸었다.
신발을 벗어 들고 고운 모래사장을
사뿐히 밟아나갔다.
파도가 밀려와 발바닥을 간질이다
모래와 함께 빠져나갔다.
낮술로 올랐던 취기는
어느덧 바닷바람에 날아가고 없었다.
유년 고백 후 비밀을 나누어 가진 사이처럼
K는 M이 한결 친해 보였다.
K가 슬그머니 M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뿌리치지 않고 얼굴만 붉혔다.
K의 뜨거운 손에서 M의 작고 차가운 손이
잠시 파르르 떨다가 이내 촉촉이 젖어갔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M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러면 어떨까요?"
"모를요?"
장심으로 M의 손바닥을 간질이던 K가
못된 장난 하다 들킨 소년처럼
흠칫하며 되물었다.
어느덧 손을 빼버린 M이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의 유소년 시절을
정말 소설로 만드는 거예요,
제가 첫 독자가 되어 읽어보고
교정도 봐드리고 할게요.
아니, 그냥 말씀만 하시면
제가 워드로 다 정리해드릴게요.
물론 선생님이 최종 검수하셔야지요.
제가 이래 봬도 학창 시절에는
문학소녀였거든요.
요즘 웹소설도 많으니 연재로 올리셔도 되고,
중간 제목 같은 거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선생님하고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울 것 같아요.
독자 없이 안 팔려도 상관없어요,
저만 보았으니 원고료는 제가 다 드릴게요.
물론 돈이 아니라,
선생님 좋아하시는 술을 양껏 사드리는걸로,
호호호"
M의 다소 들뜬 표정이
장난이나 겉치레로 보이진 않았다.
"아이구야,
이사님도 저 혼자 술 취해 지껄인
소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어요,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고요.
저만 보는 소설이라 생각하셔도 좋아요.
작가인 선생님과
유일한 독자인 저만 아는 소설,
생각만 해도 신나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다음 얘기를 해주세요,
우리 어디 좀 앉을까요?"
K은 혹시 몰라 넣어온 작은 판초를
등가방에서 꺼내 백사장 위에 펼쳤다.
"어머, 선생님은 준비성도 많으시네요,
너무 좋아요."
하늘은 하늘 같았고,
바다는 바다 같았다.
구름 같은 구름이 한가로이 피다 졌고,
파도 같은 파도가 부지런히 오고 갔다.
바람 같은 바람에 실려 온
그녀의 상큼한 살 내음이 싱그러웠다.
“어쩐 일인지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말쯤일 거예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짐을 가득 실은
작은 트럭이 비포장 도로를 달렸어요.
처마 밑에서 슬픈 얼굴로 배웅을 해주던
큰 마당집 소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도착한 곳은 지금은 엄청난 도시로 바뀐
서울 남동부와 인접한 T리란 곳이었어요.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 거였어요.
할아버지 댁은 길에서 몇 계단 위 너른 마당에
ㅁ자 모양을 한 커다란 한옥집이었어요.
대여섯 가구가 함께 살 수 있는 큰 집이었지요.
집 밖 길가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만개한 하얀 살구꽃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그 집이 떠오를 정도로 장관이었지요.
살구꽃은 매화나 벚꽃과 비슷하지만
꽃의 크기나 잎 받침이 좀 달라요.
무엇보다 꽃이 진 후에 지천으로 달리는
살구열매는 좋은 군것질거리였지요.
할아버지는 동네 유지셨데요.
집 앞의 커다란 논밭들이
모두 할아버지 소유라 했어요.
할아버지 땅을 밟지 않으면
그 동네를 다닐 수 없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늘 시대를 한 발짝 앞서가셨다는 할아버지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송이버섯 재배에 빠져계셨어요.
숨바꼭질하다 할아버지 몰래
버섯재배실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숨기엔 좋았지만 어둡고 습기 차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어요.
그곳엔 선원들이 누워 자는 선실처럼
층층이 세워진 나무 칸 들이
좁은 통로 양쪽으로 서 있었어요.
그 안에 젖은 흙 사이론 정말 작고 이쁜
송이버섯이 자라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께 혼날까 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매우 신비롭고 아늑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T리라면 지금은 신도시 아닌가요?
지금도 누가 그곳에 계시나요?
할아버님이 대 지주셨으면
엄청 갑부가 되셨겠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가만히만 계셨으면
지금 저 만나기 힘드셨을걸요, 하하하.
최근 친구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불행히도' 공부를 잘해 시골에 있지 못하고
땅 팔고 서울로 간 집안들은 고만고만 살고,
시골에서 끝까지 땅 지키며 사시던 분들은
재개발되어 다 갑부가 되었다고요.
그러나 그것은 공부가 변수가 아니라,
각자의 결정이 시대의 큰 흐름과
얼마나 부합했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해요,
양쪽 다 자신의 방법으로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지 않았겠어요?
이렇게 갑자기 전 국토가 천지개벽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어찌 보면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로
설명할 수도 있고요."
"그러네요,
공부 관련 얘기는 우스갯소리이지만,
서글픈 얘기이네요.
그래도 저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좋아요.
선생님은 서울로 오셨으니
공부 좀 한 케이스 아닌가요?
불행히도?, 호호호"
K와 M은 의기투합하여 한바탕 웃었다.
K가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는 늘 근엄하셨지만,
할머니는 저를 엄청 이뻐해 주셨어요.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시는 것은 물론,
종이만 생기면 멋진 딱지를 접어주셨지요.
항상, 무조건, 제 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의 찌찌를 만지며 잠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지금도 풍성했던 젖무덤 냄새를 기억해요.
한집 살던 고모들은 물론 할아버지, 아버님,
심지어 엄마로부터도
할머니는 든든한 빽이셨어요."
"좋은 할머니를 두셨네요,
무조건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M이 잠시 누군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를 묶으며 거들었다.
"그곳에서 겪었던 시골 생활은
훗날 제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처음엔 서울깍쟁이가 왔다고 텃세를 부리다
한바탕 싸움 뒤에 금세 친해진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개천으로 뛰어다녔지요.
칡이며, 아까시나무 꽃잎이며,
시엄이란 시큼한 풀잎과 깨꽃 들을 따먹고,
도랑의 돌을 들쳐 가재와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어요.
유리로 된 고기 잡는 어항에 된장과 깻묵과 찬밥을
섞어 붙여 개울에서 고기도 잡았지요.
피라미, 불거지, 모래 무치 같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해 먹었던 것 같아요.
여하튼 밖으로 나가면 먹을 것이 천지였어요.
가장 스릴 넘치는 먹거리는 말랭이라는
말린 고구마 슬라이스였어요.
기차역에 정차된 화물칸의 가마니를 뜯고
훔쳐와야만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지요.
어디서 돈 주고 살 수도 없었기에
반드시 담력이 필요한 먹거리였지요.
지금이야 절도로 잡혀갈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른들도 배고픈 아이들 장난이라고
웃어 넘겨주었어요.
가끔은 군용 트럭을 따라 뛰곤 했지요.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로수로 이어진 비포장
신작로를 코를 벌름거리며 쫓아갔어요.
숨을 헐떡이면서도 차 꽁무니 휘발유 냄새가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 뱃속의 회충 때문이었단 말도 있고요.
겨울에는 참 추웠는데 학교에서 숙제가
소나무 솔방울을 따오는 것이었어요.
난로를 태울 석탄이 부족해
고사리 손을 빌린 것이었지요.
여하튼 무쇠 난로 위에 도시락을 얹었다가
누룽지와 함께 먹는 맛은 최고였어요.
어느 날 읍내의 작은 2층 양옥집에
서울서 이사 온 소녀가 무지 이쁘다는 소문이
화제가 되었어요.
친구들과 소녀를 한번 보기 위해
그 집 담장에 숨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네요."
“차암, 선생님은 가시는 곳마다
여자와 얽히시네요? 크크,
어렸을 때는 시골 생활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만 살아서 자연에 대한 추억이
하나도 없는데,
거기엔 얼마나 계셨나요?”
슬그머니 K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M이 다정스레 물었다.
바닷바람에 날리는 M의 고운 머릿결에서
상큼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1년 정도밖엔 안된 것 같은데
제 초등학교 추억의 반 이상이 그곳이에요.
시골에서의 추억이 이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 주었어요.
10여 년 전 우연히 가보니 추억 속의 그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는 뚜렷이 남아있어요.
두 세계가 기억과 현실에서
모두 존재할 수 있나 봐요. “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그럼 1년 후에 서울로 다시 온 거예요?
서울에서의 초딩 생활은 어떠셨나요?"
자신의 말을 정말 재미있게 들어주는
M의 고마운 재촉에
K는 생수 한 모금을 들이키며
오랜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