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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Dec 30. 2018

같은 시간을 걷는 것에 대한 감사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등잔 밑이 어둡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 등의 속담들의 뜻은 가까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지만, 늘 놓치는 것. 시간이 아닐까? 때 시(時)와 사이 간(間).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정의된다.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 정해지지 않은 시각들의 사이를 우린 시간이라 한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일 수도 있고, 누군가한테는 찰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토요일 저녁 약속도 없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주인공으로 나오며 원작은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단편이 토대가 되었다. 과거에 봤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지금까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찍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벤자민은 80세의 외모로 태어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 일반적으로 삶이란 어린잎으로 태어나서 찬란한 젊음을 느끼다가 시들어가는 것이지만, 벤자민에게 이 모든 것은 반대로 진행된다. 벤자민을 낳다가 죽은 엄마는 죽기 전 벤자민의 아빠한테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지켜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어려움을 예상했기에 남편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길 때까지 숨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벤자민의 아빠는 흉측하게 늙은 아이 벤자민을 요양원 앞에 버려두고 도망간다.


요양원의 관리인(?) 퀴니의 아들로 벤자민은 삶을 시작한다. 요양원에는 다들 늙은 사람들뿐이라서 벤자민은 원래 세상이 그런 줄 알았다. 그는 집의 냄새와 소리를 좋아했고, 어린아이와 다르게 그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시작하게 된다. 관절염이 조금씩 낳기 시작하고, 시력이 건강해지면서 책을 읽고 요양원의 어른들에게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번개를 7번 맞았고, 누군가는 외출하지 않아도 늘 화려하게 옷을 입었지만 벤자민에게 그 모든 것은 새로운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1. 데이지와의 사랑

데이지와의 만남은 강렬했다. 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파란 눈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벤자민은 양로원에 놀러 온 데이지와 각별한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둘의 나이는 비슷했지만 사는 것은 달랐다. 데이지는 발레를 통해 세상을 돌아다녔고, 모두가 살고 있는 젊음에서 늙어가는 삶을 살았다. 반면, 벤자민은 할 수 없는 것들의 삶을 시작했다. 걸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잘 들리지도 않고 모두가 죽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면서 삶의 소중함을 몸으로 익혔다. 화려하거나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꾸준했고 또 차분했다. 데이지와 벤자민은 여러 번 엇갈렸다. 나이는 비슷했을지 몰라도 살아온 삶이 달랐다. 처음 성인이 된 데이지와 헤어질 때 벤자민은 "우리의 삶은 기회로부터 시작된다. 놓쳐버린 기회에 의해서도"라 말했다. 그녀와 잘될 수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놓쳐버린 기회로 인해서 결국 그들은 비슷한 나이에 행복한 삶을 시작하게 된다. 몇 년뿐이지만 삶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다양한 삶들의 가르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다양한 삶의 가치를 한번 더 인식시켜 준다. 그리고 다른 삶을 사는 우리들이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어린 데이지와 놀던 벤자민은 데이지의 할머니한테 혼이 난다. 상처 입은 벤자민은 자신을 키워준 엄마 퀴니에게 "난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이죠?"라고 묻는다. 퀴니는 어린 벤자민을 꼭 안아주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단다."라고 말하며 위로해준다. 어떤 삶을 살던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은 똑같다는 것을 퀴니는 어린 벤자민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벤자민은 다양한 사람들은 만난다. 처음 양인선을 타면서 만나게 된 선장은 지금은 배를 몰지만 꿈이 예술가였다. 그래서 그는 온몸에 문신을 하면서 스스로 예술가가 되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현실이 싫으면 미친개처럼 날뛰거나 현실을 욕하고 신을 저주해도 돼, 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받아들여야 해." 전쟁 중에 총을 맞아 죽는 선장은 그렇게 죽기 전에 삶의 진리를 깨닫고 벤자민에게 무거운 진리를 건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생각하며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로 보냈어요." 벤자민이 처음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던 유부녀 틸다 스윈튼은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벤자민은 그녀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틸다 스윈튼은 벤자민을 통해서 다시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찾아 나서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아무리 마음이 약해졌어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음악의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마지막 벤자민 버튼의 내레이션처럼, 누군가일 우리는 다들 각자의 삶을 산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글을 읽는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난다. 삶은 다양하지만 결국 우리의 종착지는 한 곳이다.


3. 나비효과

누군가는 삶은 결과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결말은 언제나 새로운 요소들이 끼어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영화 전반적으로 잘 흘러가다가 나오는 데이지의 사고 장면은 꽤나 감각적이었다. 결말적으로 데이지는 사고가 나서 발레리나로의 꿈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과정의 연출도 연출이지만 벤자민의 대사 때문이다. "딱 하나만 멀쩡했어도."


누군가가 지각을 하지 않았다면, 택시기사가 커피를 사 먹지 않았다면

간호사가 전날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데이지의 친구가 신발끈이 풀리지 않았다면

택시기사가 잠깐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데이지가 거기서 춤을 추지 않았다면


수많은 가정들이 결과에 붙어있다. 내 인생은 내가 정한 대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도 영향을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위의 모든 것들이 다 가정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결과가 일어나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늘 수많은 사건에 의해 차곡차곡 채워진다. 지금 이 순간 작은 행동 하나로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태풍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처럼, 정의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들이 보이지 않아도 엮여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야 한다.


4.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영화를 보면서 자주 울컥했다. 첫 장면은 아마도 퀴니가 벤자민을 껴안으면서 모두의 종착점이 같은 곳이라 말하는 장면일 것이다. 두 번째는 벤자민이 아버지와 일출을 보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멀리 돌아왔지만 벤자민의 용서로 잠깐이나마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그 잠깐의 시간을 같은 마음으로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데이지와 벤자민에 관한 것이었다. 30~40대의 나이만 동년배의 얼굴을 하고 살 수 있는 둘의 사랑은 애틋했다. 벤자민이 "여드름이 나도 사랑해줘"라고 하는 장면이 참 안타까웠다. 장난처럼 그들은 이야기했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같은 모습으로 종착점을 향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데이지가 수영을 하다가 젊은 여자의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다. 데이지는 벤자민과 다르게 점점 늙어가는 자신이 참담했을 것이다. 벤자민은 점점 더 젊어지고 멋있어지지만, 데이지는 점점 주름이 짙어지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젊어지는 벤자민이 대비되게 데이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데이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늙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을 가진 데이지와 다르게 벤자민은 어려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 데이지가 벤자민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크게 기뻐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닮을까 봐 두려웠고, 자신이 아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딸에게 아빠로의 방패가 되어주고 싶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딸보다 더 어려질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가족을 떠났다. 절제된 감정으로 떠나는 벤자민과 잡지 못하고 그저 바라봐야 하는 데이지의 눈빛에서 그들의 슬픈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도 인생도 내 마음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에서 내 인생을 흔들어 놓지만, 인생은 지속되고 우리는 순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절제된 슬픔과 잔잔한 내레이션이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었기에 보는 내내 마음으로 밖에 울 수 없었다. 어떤 슬픔은 눈물이 흐르지 않아도 눈동자에서 드러난다. 벤자민도 데이지도 늙어가면서 생김새는 달라졌지만, 슬픔을 통제하는 방법은 똑같이 배운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지금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생각한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같이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손에 쥐어진 이 행복을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은 벤자민이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정리해보았다. 딸과 비슷한 나이로 악수를 하면서 아름답게 큰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했던 벤자민은 멀리서도 여전히 딸을 사랑하는 아빠였다. 육체는 딸보다 어려졌지만 마지막까지 아빠로 딸을 아꼈다. 그의 사랑이 잔잔히 느껴져서 더 안타까웠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를 인생 영화 중 하나로 추천해도 될 것 같다.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 싶구나

학교 입학식에 널 데려가고 싶다.

네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구나.

네가 슬퍼할 땐 안아주고 싶다.

아빠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텐데,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지금처럼 살아도 되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최선과 최악의 선택 중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바라마. 네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좋겠구나.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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