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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Feb 05. 2019

나의 처음에 너의 마지막을 말하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보고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시간에 관련된 영화는 영원히 지속되는 소재 중 하나다. 어쩔 때는 지긋지긋하게 또 나오네 싶지만, 또 어떤 때는 그래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시간에 관한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소재를 삼기도 좋다. 


영화 <해피 데스 데이> 같은 경우 생일날에 반복해서 죽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 <하루>의 경우도 사고가 난 하루가 반복된다. 영화 <이프 온리> 역시 시간을 돌려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는다. 이들은 영화 속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영광(?)을 가지게 된다. 반복된 타임 루프의 영화는 선택에 관한 질문을 건넨다. 네가 다시 살아간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내릴래?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경우는 시간과 사랑에 대한 영화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연결되기 힘든 사랑을 표현하면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역시 이와 비슷하다. 주인공 둘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스무 살의 타카토시는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에미를 만난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 이런 것일까? 타카토시는 에미와 같이 역에서 내리면서 말을 건넨다. 스무 살의 풋풋한 첫사랑, 나는 영화를 보는 처음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일본판인가 싶었다. 풋풋하고 또 반짝거렸다.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웃게 되었다.


사랑의 시작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간은 흐르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둘의 영화 같은 (영화야.) 이후 시간은 새롭게 다시 쓰인다. 타카토시에게는 에미를 만나고 1일째. 영화는 친절하게 둘의 만남에 대한 기록을 남겨준다. 하지만 보통의 영화에서 나오는 며칠 후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기분이 오묘하다. 흘러가는 지하철, 반짝거리며 흐르는 강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이 멈추지 않는 것들이 나타난다. 영화의 중간중간 나오는 모래시계, 코인 세탁방에서 돌아가는 세탁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 등등 감독은 영화의 요소요소마다 시간에 관련된 모듯 것들을 심어놓았다. 시간은 흐른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하지만 어떤 시간은 멈춘다. 톱니바퀴는 연료가 다 되면 멈출 것이고, 세탁기는 세탁이 끝나면 멈춘다. 지하철 역시 역에 다다르면 멈추게 된다. 멈추고 다시 나아간다. 멈춘다. 나아간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중간중간 멈춘다. 영원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사실은 영원하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선 간장 종지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엇갈리는 것들도 언젠가는 만난다.


영화의 첫 시작은 친절하지 않다. 뭔가 풋풋한 사랑이 시작되는데 뭔가 자꾸 신비롭다. 마치 어떤 요소들을 여기저기 다 숨겨놨어요! 하고 유혹하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타카토시는 에미가 모든 것을 아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자신과 잘 맞는다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오히려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인지 능력은 쉽게 착각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운명적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엇갈리는 것들도 언젠가 한 번씩은 만나기 마련이다. 복잡한 길도 그렇고, 어렸을 때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살다가 보면 언젠가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된다. 인생이란 참 오묘하게도 내키지 않게 연결되기도 한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나다.>의 제목처럼 둘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다른 버전이라 생각하면 쉽다.


타카토시는 일반적인 우리의 시간을 산다. → 이 방향의 시간을 살고 있다. 에미 역시 → 이 방향의 시간대로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둘의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타카토시의 세상 시간은 → 이 방향이지만 타카토시 세상에 온 에미의 시간은 ← 반대 방향이다. 이 둘은 5살 때 만났고, 10살에 만났고, 15살에 만났으며, 20살에 서로를 인지하게 되었다. 둘의 시간은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만나게 된다. 5년에 한 번.


매일 사랑하는데, 매일 이별해야한다.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일까, 만나는 것일까


#에미의 눈물을 이해하는 순간 눈물이 난다.


에미는 눈물이 많다. 타카토시가 내일 또 만나자고 해도 눈물이 났고, 처음 손을 잡을 때도 눈물을 흘렸다. 둘만의 이름으로 처음 부르는 순간에도 에미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울지? 감동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영화를 다 보게 되면 눈물이 나게 된다. 정말 지독하게 순애보적인 사랑이다. 이런 멍청이들! 하고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참 아름답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억할 수 있다면, 사랑할 수 있어


에미와 타카토시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5년에 한 번 딱 30일이다. 전체의 인생 중에서 이들이 서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30일이다. 타카토시가 처음 에미를 만나게 되는 날은 사실 에미에게는 마지막 만남의 순간이었다. 타카토시에게는 앞으로 계속해서 에미를 만나겠지만, 에미한테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할 수 없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에미는 울었다. 


타카토시의 다시 만날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에미에게 오늘의 타카토시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처음 손을 잡는다고 좋아했던 타카토시와는 다르게 에미에게는 타카토시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는 날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모든 것이 다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에미는 눈물을 흘렸다. 매일매일 에미는 타카토시와 이별 중이었기 때문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나


#모두 연극을 하고 살아간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에미가 타카토시의 머리를 잘라주는 날에 타카토시는 연극에서 가지게 된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이야기한다. 그 역할에 심취해서 잘 때도 옷을 벗지 않았다고 해맑게 이야기하면서 에미에게 묻는다. "에미도 연극을 해본 적이 있어?" 영화를 보는 동안 감독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풋풋한 사랑이 연출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에미에게 상처를 주는 대사들이었다. 아니 감당해야 하는 대사들이었을까. 에미는 타카토시를 사랑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처음 보는 척,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척, 타카토시를 만나는 30일 모든 나날이 에미에게는 연기였을지 모른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타카토시는 에미를 걱정한다. 연기를 하는 에미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대본대로 살아야 하는 에미가 필요로 하는 노력을 타카토시는 인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에미는 타카토시에게 웃으며 말한다. 즐거운 순간에는 연기를 해도 즐거운 것이라고. 에미는 타카토시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보는 동안에는 풋풋하고 사랑스럽지만, 보고 나면 슬픈 여운이 찐하게 남는다. 이런 영화야 말로 반전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지나고 나면 에미의 모든 말들은 다 작별 인사였다. 사랑을 하는 순간에 작별인사를 한다니, 이 얼마나 모순된 사랑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웃어줘야해.


사랑을 하게 되면 호칭이 변한다. 타카토시에게 에미를 부르는 호칭의 변화는 풋풋하다. 후쿠쥬 에미 → 후쿠쥬 양 → 에미짱 → 에미 점점 편한 사이로 변하고 사랑이 깊어진다. 하지만 에미의 호칭은 깊어진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 타카토시 → 타카토시 군 → 미나미야마 타카토시 군 점점 어색하고 거리를 두는 호칭을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미에게 이름이란 너무나 잔인한 부름이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곁에 있는 행복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서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소중하고 또 달콤하다.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일 것이다. 나와 당신의 행복한 순간을 공유할 수 없으면 서로에게는 결국 슬픔이 남게 된다. 아쉬움과 미련 이런 모든 것들을 잊기 위해서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시간에 관한 사랑 영화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그리고 지금 사랑을 위해서 한없이 노력해야한다고.


그의 곁에 겨우 다다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건축학개론>이 생각난 이유는 주인공의 조언자 친구 때문이다. 우에야마의 역할로 나오는 이 친구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로 나오는 조정석과 너무나 닮았다. 키가 커진 조정석이랄까... 그래서 더 영화가 애틋했나 보다. 건축학개론 느낌이 너무나 났기 때문에... 풋풋하고 어색한 남자와 모든 것을 다 아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조언가 친구. 허헣허


납득이와 우에야마 두 명의 조정석이 보이는가
키 큰 조정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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