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콘 Feb 06. 2019

언젠가, 하루 동안의 희망

영화 <원데이>를 보고


짐 스터게스와 앤 해서웨이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존재 합니다.


내 시대의 노래 <언젠가는>은 나얼과 싸이가 불렀던 노래였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 노래 <언젠가는>의 첫 소절이다. 과거 어린 시절에는 이 노래를 아무것도 모르고 불렀다. 언젠가는 어른이 되겠지, 언젠가는 청춘이 지나가는 느낌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시절에는 언젠가는 이라는 시간은 내겐 너무도 먼 꿈나라와 같았다. 닿지 않는, 뿌옇게 흐린 날들 중 하나였다.


영화 <One day>는 딱 그 제목과 맞는 영화였다. 언젠가는, 오는 어떤 하루의 날이라는 알 수 없는 애매한 말들로 기대감을 주는 영화였다. 모름지기 사랑 영화란 닿을 듯 말 듯하다가 닿는 것이 로맨스 영화의 진수이지만,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로맨스는 몰입하기가 꽤나 쉽지 않다. 


영화 <One Day>는 1988년 7월 15일에 시작한다. 대학 졸업식 날 애매한 썸을 타다가 친구가 된 엠마 몰리(앤 해서웨이)와 덱스터 메이휴(짐 스터게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애매한 감정을 남겨두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있다. 사랑하긴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 척을 한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변명이 가득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이들은 친구인지 썸인지 알 수 없는 관계를 몇 년간이나 유지한다. 이 세상 가장 많은 남녀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애매한 관계이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어요."와 같은 고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들의 순애보는 사랑이라기보다는 고구마를 한 사발 먹는 기분이 든다.


현실에 타협하는 엠마는 자신감이 조금 부족하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꿈을 가졌지만, 그녀의 삶은 어쩐지 영국 날씨와 같이 우중충하기만 하다. 덱스터를 마음에 품고 있지만, 덱스터는 잘생겼고 인기가 많기에 자신과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아니면 자신과 만나고 나서 헤어질 바에는 친구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엠마도 덱스터 옆에선 빛이 난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덱스터를 친구라고 부른다.


잘생기고 인기가 많은 덱스터는 변명이 많다.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줘야지 이끌린다. 자신이 스스로 누군가를 선택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칠 용기가 없다. 부모님이랑 점심을 먹기로 해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해서, 전화를 받지 않아서 등등 그에게는 넘쳐나는 변명거리가 존재한다. 덱스터가 엠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변명이 많고 인기가 많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않아서이다. 그는 인기가 많지만 겁이 많은 겁쟁이일 뿐이다.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칠 자신이 없기에 변명을 하면서 상황에 대한 당위성을 가져간다. 자신이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할 자신이 없지만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서 덱스터는 여전히 엠마를 친구라고 부른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원한다.


10년이 넘는 썸을 타는 이들, 이들은 확신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 아니 선택받는다. 왜냐면 자신을 선택해준 사람은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확신이 없지만, 선택에 대한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옆에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멍청하게!


모든 관계에서 어정쩡한 것이 제일 나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애매한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이건 그저 어장관리일 뿐이다. 덱스터와 엠마는 서로를 서로의 어장에 관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엠마가 덱스터한테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는 서로를 가능성으로만 둔 채로 남겨둔 것이다. 각자의 어장에 대한 교집합에서 그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른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사랑은 확실한 사랑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밖에 없어. 하지만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야. 이런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순애보적인 사랑, 슬픈 사랑이라고 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어질 수 없지만 푹 빠지는 사랑을 찬사 하는 것은 그 사랑의 영혼이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덱스터와 엠마의 어정쩡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저 지속되는 호감 속의 어장관리일 뿐.



#7월 15일이라는 One day


영화 <One day>는 제목의 이중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전에서 One day를 찾아보면 언젠가(미래의 어느 시기나 과거의 특정한 날을 가리킴)이라고 나와있다. 그리고 그 밑에 One-day라고 하루 동안의 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영화는 7월 15일이라는 특정한 하루를 기점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7월 15일에 둘은 만났고, 매년 7월 15일마다 닿을 듯 말듯한 관계가 지속된다. 


덱스터는 결혼을 하고 다시 솔로가 되었다. 엠마를 여전히 친구로 두지만, 엠마가 연애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가. 그런데 차라리 이게 좋았다. 사랑은 원래 이중성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이리치이고 저리치인 덱스터가 10년이 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엠마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스르고 도전한 것은 덱스터가 아니고 엠마였다. 덱스터는 또다시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덱스터에겐 운명을 이겨낼 숙제가 필요했나 보다. 7월 15일 덱스터와 엠마가 만난 날에 엠마는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애매한 썸에서 행복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를 갖지도 못하고 떠났다. 혼자 남은 덱스터는 자신을 상처 주면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빠의 조언(순간 DC영화인가 생각했다.)을 받고 덱스터는 운명을 거스르고 마음을 다잡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언젠가 행복했던 순간의 One day는 덱스터의 자아성찰로 끝나게 된다.



#아쉬운 영화였다.


찬사를 받았던 영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내게는 굉장히 아쉬운 영화였다. 우선 어중간한 썸이 너무나 길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제목을 옳은 선택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고 썼다가 바꿨다. 그 이유는 옳은 선택은 빠르게 해야 한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One day>처럼 갑자기 사랑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너무 늦은 선택 때문에 이 시간이 짧으면 얼마나 슬플까? 아쉬운 영화였지만 한 가지 교훈이 남는 것이 있다. 사랑을 위해서는 언젠가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에 엠마와 덱스터가 잠깐 산책을 하는 순간이 나온다. 그때 엠마가 말한다. 우리가 편지를 하지 않아도, 전화를 하거나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고. 그래, 사랑에 있어서는 언젠가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열렬하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세계를 위해선 선택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