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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Feb 07. 2019

갑과 을의 사회에 대해서

영화 <베테랑>을 보고

이제는 너무도 흔해서 새롭지도 않은 "갑의 횡포"에 대한 내용들이 넘쳐난다. 종업원을 무릎 꿇게 만들었던 사건이나, 땅콩으로 비행기를 회항시켰던 사건들, 영화 <베테랑>에도 나오는 맷값 이야기 등등 너무나 많은 갑의 횡포가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다. 사회 정의는 이럴 때 갑의 횡포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철퇴를 내려주기를 원하지만 사회의 법은 생각만큼 서민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이라는 인류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은 권력을 이용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다.


영화 <베테랑>은 이런 사회에 시원한 사이다를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시원한 액션 영화를 찍는 류승완 감독은 적절한 유머와 권선징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관객들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매우 단순한 패턴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스토리도 즐긴다. 가끔은 이런 게 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이 불공평한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같은 출발선에 출발하는 것은 스포츠 경기뿐이다. 스포츠 경기가 아닌 이상에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은 많지 않다. 특히 인류 사회에서는 한 번도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양반 가문에 태어난 자식은 죽을 때까지 양반이었고, 천민 가문에 태어난 자식은 죽어서도 천민이었다. 그런 불공평한 사회를 조금이나마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피를 흘렸지만 지구의 역사만큼 깊은 불공평한 출생은 바뀐 적이 없다.


재벌가의 배다른 자식인 조태오는 자신이 태어난 위치를 이용해서 어긋나게 살았다. 그는 자신의 자격지심을 돈으로 해결했고, 자신의 위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았기에 이를 철저하게 연기했다.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는 자가 선택받지 못하면 독단적이기 마련이다. 조태오는 집안의 돈이라는 권력을 황제처럼 사용했지만, 찻잔에 물이 많아지면 넘치듯이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많아지면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쪽팔리지 않게는 살아야지


조태오와 같이 자신들의 권력을 적절하게 이용하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와 반대로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형사 서도철과 서도철의 아내는 전형적인 가오가 넘치는 시민의 역할을 보여준다. 돈은 풍족하지 않지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법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멍청하다,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이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같은 경찰이 재벌들에게 돈을 받아도, 손에 수많은 돈을 쥐어줘도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이들이 법을 지키는 것은 마지막 조태오와 서도철의 액션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조태오에게 한 없이 맞기만 한 서도철은 차마 조태오처럼 그를 때리지 못했다. 수많은 카메라가 공익이라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중요성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칠 만큼 다치고 나서야 그는 "정당방위"라는 카드를 꺼냈다. 정당방위가 성립되기까지 그는 꽤나 많이 다쳐야만 했다.



#같은 상처여도 아픔이 다르다.


왜 같은 싸움이었는데, 꼭 더 많이 아픈 사람들은 '을'일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돈 때문이다. 결국 돈이라는 것은 사회를 살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잣대 중 하나다. 돈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편하게 누릴 수가 없다. '을'이 '갑'에 맞서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일방적인 피해를 입는다.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꽤나 힘든 시간을 버텨야 하고, 사회의 대부분이 '갑'인 이 세상에 '을'의 자리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분명 권선징악으로 '갑'이 처벌을 받지만 어쩐지 이상하게 '을'이 아프다. '갑'은 이상하게도 잘 산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것 중 하나를 빼앗겼을 뿐이지만, '을'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사회는 참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는 전제로 이 세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억울해도 하소연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끔 영화 <베테랑> 같은 영화로 속을 풀어본다. 과거 양반들을 풍자하기 위해서 탈춤이 유행했고, 구운몽, 홍길동전 같은 소설들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다들 픽션으로나마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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