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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Feb 11. 2019

은퇴한다고 늙은 거 아니다.

영화 <폴라>를 보고

영화 <폴라>는 혜성처럼 갑자기 넷플릭스에 나타났다. 은퇴한 암살자를 죽이려는 젊은 암살자들의 내용이라는 것을 예고편을 통해서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주인공 아저씨가 매우 음침해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 조금 유치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 섣부른 판단을 후회했다. 영화 <폴라>는 기가 막힌 영화 중 하나다.


한국에는 원빈의 영화 <아저씨>가 존재하고 미국에는 키아누 리부스의 영화 <존 윅>이 존재한다. 주인공 하나로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영화였고, 리암 니슨 아저씨의 영화 <테이큰>이 존재한다. 그리고 2019년에는 이들의 옆에 나란히 서게 될 영화 <폴라>가 나타났다.


영화 <폴라>의 주인공 매즈 미켈슨은 여러 영화에서 간간히 얼굴을 보여주었고, 유명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악역으로 나오면서 자신의 얼굴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런데 이 아저씨의 진가는 액션 연기보다는 눈빛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저씨의 그득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게 된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다.


영화 <폴라>는 매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색감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주인공인 덩컨 비즐라는 지속적으로 회색의 어둠, 고요한 칼날과 같지만 덩컨 비즐라 외의 사람들은 쨍한 색감의 대비가 이뤄진다. 영화를 보면 전반적으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색감으로 영상이 촬영되고, 이들의 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쨍한 여름과 같은 느낌으로 감각적인 색감을 전달해준다. 


특히 빌런으로 나오는 덩컨 비즐라의 고용주는 굉장히 원초적인 색감의 옷으로 눈을 찡그리게 만든다. 안 어울리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역할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예전 배트맨의 빌런 중 하나였던 펭귄맨이 기억났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기를 바란다.


영상이 감각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무래도 전체적인 영화 스토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퇴를 하는 늙은 암살자와 새로운 시대를 쓰고 싶어 하는 새로운 암살자들의 대비가 단순 색감으로 극강 하게 표현된다. 이미 한 시대를 평정했던 블랙 카이저는 조금씩 활력을 잃은 회색이고 젊은 암살자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색을 통해서 세대의 전환을 암시했다.


#스토리는 진부할 수 있다.


스토리는 진부할 수 있다. 전설의 암살자 블랙 카이저 덩컨 비즐라일 수 있고, 수십 명의 사람들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엄청 못된 악당들이지만, 주인공에게 너무나 쉽게 당할 수도 있다. 스토리가 진부하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는가 일 것이다. 연출 방식에 따라서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도 진부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영화 <폴라>는 화려한 액션신으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조금은 잔인한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런 장면들 덕분에 영화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잔인한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수 있다. 피가 조금은 많이 튀고, 뭐... 그렇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곧 50이 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암살자인 덩컨 비즐라가 은퇴한다. 암살자여도 회사는 존재하는 법, 그는 퇴직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분배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한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고 적적한 삶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개를 데리고 온다. 물론 덩컨 비즐라는 존 윅처럼 개 때문에 모두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PTSD(외상 증후군) 때문에 하루 만에 개와 사별하고, 크게 컨트롤하지 않아도 되는 금붕어를 키우기 시작한다. 


비즐라의 회사는 부채가 많은데, 이는 퇴직자들의 퇴직금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약서에는 퇴직하기 전에 직원이 죽으면 모든 퇴직연금은 회사가 소유하게 된다는 개 똥 같은 조항을 만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채로 잡힌 퇴직금을 없애기 위해서 암살 회사는 은퇴 직전의 직원들을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 있게 도와(?) 준다.


#잘못 건드리면 다 ㅈ 되는 거야.


800만 달러라는 퇴직금을 땡기는 덩컨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죽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괜히 건드린 회사는 모든 직원도 잃고 목숨도 읽게 된다. 건들면 문다. 이 말이 덩컨 비즐라에게 딱 어울린다. 건드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 친구로 살 수 있지만, 건드리면 그는 끝까지 간다.


영화 <존 윅>이 생각난 것은 덩컨의 불도저 같은 무모함 때문이었다. 무수한 적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무모함에서 관객들은 묘한 짜릿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완전 강해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다. 세상의 여러 가지 두려움을 자주 피하고 싶어 하는 나와는 꽤나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끌릴 수밖에 없다.


가르칠 수 있는건 총 뿐이야?


액션도 나쁘지 않았고, 신기술을 사용하는 덩컨 비즐라는 전혀 은퇴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PTSD의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긴 하지만, 그 부분이 영화의 가장 큰 옥에 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2편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조금 기대를 해본다. 속이 시원하게 때리고 부수는 것을 보고 싶을 때, 나는 가차 없이 모든 이들에게 영화 <폴라>를 추천하고 싶다. 


감독님과 매즈 미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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