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고
누군가의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선 꽤나 큰 배짱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견딜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왜 어려울까? 그 이유는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말이라는 것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이라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희대의 탈옥수였던 신창원이 잡혔을 때 했던 말이 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 가져웠는데 뭐하로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만 있었다면,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쌓아주지 않았다면 희대의 탈옥수였던 신창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 말의 중요성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 증명된다. 이스라엘의 엄마들은 아이가 말의 뜻도 모를 때부터 "네!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도록 만든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먼저 "네! 할 수 있어요!"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뜻도 모르면서 따라 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0.25%에 불과한 소수 민족인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하는 힘은 이런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는 오래오래 지속된다.
훗날 조지 6세가 되어 영국 왕이 되었던 알버트는 어릴 적 트라우마로 말 더듬이가 되었다. 알버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더듬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할 때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해서 수치심을 느꼈다. 자신도 이런 자신이 싫지만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치료사로 오는 모든 사람들의 치료법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치료를 점점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리오넬 로그는 조금 다른 치료사였다. 그는 유명한 치료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로그만의 방법으로 알버트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알버트는 주목받는 형과 억압적인 아버지가 존재했다. 주목받는 형에 비해서 자신은 점점 소심해졌고, 안짱다리를 고치기 위해서 철제 기구를 강제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아버지인 조지 5세는 당당하게 뱉어대라고 억압했고, 알버트의 유모는 조지 5세 모르게 알버트를 괴롭혔다. 수많은 억압과 막중한 왕족이라는 틀 안에서 약해졌고, 그렇게 말 더듬이가 되었고 욱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희대의 스캔들로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태를 보였던 알버트의 형은 1년 만에 왕의 자리에서 사퇴했다. 왕이 된다는 부담감을 가졌던 알버트는 더욱더 강한 억압을 받게 되었다. 리오넬 로그를 통해서 조금씩 말 더듬는 습관을 고치던 알버트는 다시 더듬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친구라는 것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동급의 친구보다는 계급이 어긋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친구가 더욱 소중한 법이다. 리오넬 로그는 알버트의 가족들만 부르는 버티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알버트와 친해졌다.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고, 근육을 풀어주거나 긴장을 풀어주는 방법을 사용해서 알버티가 연설을 편히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알버트가 조지 6세가 되어서 즉위식에 오를 때도 로그는 조지 6세의 옆에서 그를 도왔다. 왕의 자리는 왕의 권환이 필요하다. 왕이나 왕이 아닌 사람이나 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왕이 존재하고 권좌에 앉은 사람에게 일반인들은 더 많은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일반인의 기대에 많이 못 미쳤던 조지 6세는 로그와 함께 왕의 첫 번째 자격인 연설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조지 6세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개인적인 조언을 해줬던 리오넬 로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도 콤플렉스도 결국은 의지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
히틀러가 전쟁을 선포하고 영국 역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 왕의 연설이 필요했다. 수많은 국민들에게 조지 6세는 왕의 자격을 시험받아야만 했다. 9분의 연설을 완벽하기 하기 위해서 조지 6세는 로그를 불러들였다. 로그가 전문적인 연구를 통한 학위를 받지 않았지만 조지 6세는 로그를 믿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더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내보일 수 있게 만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안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오직 로그만큼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조지 6세는 무사히 전쟁 선포 연설을 끝마칠 수 있었다.
트라우마도 콤플렉스도 결국은 극복할 수 있다. "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라고 했다. 신은 조지 6세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으로 말 더듬는 시련을 주었고, 로그라는 진정한 친구가 옆에서 조지 6세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조지 6세는 시력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1944년 조지 6세는 로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주었고, 모든 연설이 있을 때마다 조지 6세의 옆에는 로그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계속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를 챙겼다.
전쟁 선포 연설이 무사히 끝난 후 로그는 조지 6세에게 "W를 아직도 더듬어요."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제는 로그의 농을 받아칠 수 있게 된 조지 6세는 "좀 더듬어야 나인 줄 알죠."라고 되받는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진 것이고 오직 로그만 진정한 친구처럼 조지 6세에게 장난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통해서 우리는 왕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권위 있게 보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조금씩은 부족함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약하고 틈이 존재한다. 왕이라는 위엄을 보여야 하는 자가 방황하고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시련을 극복했음을 보여주면서 일반인들도 모두 좌절을 경험해도 결국에는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이 이야기는 절대 허구가 아니고 실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믿는 높은 학벌과 의사들의 처방전이 누군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법은 보편적으로 일치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통용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일반적인 치료법이 아닌 마음과 마음을 열고 친구로서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을 열어두고 내 속을 털어놀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영화를 보면 느끼지만 조지 6세의 유일한 친구는 로그뿐이 아니었다. 조지 6세가 말더듬이병을 고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언제나 옆에서 걱정해준 아내 역시 조지 6세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던 친구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믿으면서 아끼지 않는 신뢰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의 신념과 사랑에 찬사의 박수를 아끼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