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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ul 16. 2018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목욕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목욕탕 문을 닫습니다. 2018년 6월 12일까지 영업합니다. 감사합니다." 8박 9일의 몽골 여행을 다녀온 후, 몸 안의 사막향을 털어내기 위해 간 동네 목욕탕에는 위와 같은 메세지가 걸려있었다. 다행이 마지막 2일전에 왔다 하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슬픈 마음이 가슴을 먼저 때렸다. 동네에 있던 마지막 목욕탕이었는데, 이제 이마저도 더는 이용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우리 동네는 지역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꽤 늦었다. 그래서 산업화 되지 않은 동네의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릴적에는 집 앞에 바로 목욕탕이 있었다. 초등학교때는 늘 주말마다 아빠나 형과 함께 가서 묵은 때를 밀고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를 가기전 집 앞 목욕탕은 삐까번쩍한 빌라로 바뀌었다. 그때는 그저 좀 더 멀리 목욕탕을 가야한다는 사실이 짜증났을 뿐, 그게 발전의 시작인지 몰랐다. 그 후로는 시장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갔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리지만 뜨끈한 탕에서 몸을 녹일 수 있었기에 괜찮았다. 내가 대학교를 입학할 때 쯤 목욕탕이 사라졌는데,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점점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이 줄었기 때문에,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사라지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네에 목욕탕이 하나만 남게 되었다. 독점의 효과인지 목욕탕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군대 휴가를 나올 때마다 늘 들렸는데, 휴가때마다 동네에는 새로운 아파트 공사장이 생겼지만 목욕탕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날 기다려주었다. 그 후 헬스장에 다니면서 목욕탕은 분기에 한번 찾게 되었다. 때를 밀지 않아도 스크럽으로 헬스장 샤워실에서 각질을 제거할 수 있었고, 가끔 깊은 탕이 생각날 때면 목욕탕에 들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궜다.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집 자체에 욕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더는 목욕탕의 수요가 없다. 주말마다 아빠손 엄마손을 잡고 온 몸이 벌겋게 때가 밀리고 나오면서 마셨던 바나나 우유의 맛을 아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팡팡!! 치면서 때를 밀어주던 때밀이 아저씨들은 어느덧 주름이 지긋하게 잡힌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제 목욕탕을 찾는 것은 옛날의 향수가 그리운 사람들뿐인듯 하다. 주말마다 목욕탕 굴뚝에서 연기가 났었는데 이젠 뿌연 하늘만이 가득한 동네가 조금은 어색해진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바뀌어가고 기억하는 장소가 다른 건물들로 대체되면서 내 감성마저 건물들처럼 네모랗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동네에 목욕탕을 없앤 것은 잘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 자리잡은 고도화된 문명이 아닐까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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