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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ul 19. 2018

급행열차를 탔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

   "지금 XX급행,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승강장 앞으로 몰려들었다. 문이 열리고 작은 박스 안에서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나 역시 작은 박스 안으로 등 떠밀리듯 내 몸을 맡겨본다. 잔상을 남기며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들을 바라보고 그 정거장마다 서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나가면서 문득 잔 생각들이이 호수를 흔드는 바람처럼 밀려들었다.


   우리는 모두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닐까? 남겨진 것들, 한 번 더 봐야 하는 것들을 뒤로하고 목적지에만 도착하기 위해서 애써 외면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뒤로 남겨진 아이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도착한다고 해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이 사회는 앞만 보고 걸어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은 뜬금 없었지만 도착역을 기다리는 수많은 탑승객들 사이에서 멍하니 생각하기 좋은 주제였음은 틀림이 없었다.



    어두운 흙에 갇혀있는 씨앗이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해선 거쳐가야 하는 정거장 같은 시간들이 있다.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한 뜨거운 열정이 필요하고, 적당한 물기와 적정량의 햇빛으로 길을 잡아 주어야 한다. 여러 번의 비바람을 맞으면서 꺾이기도 해야 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하며 제 몸을 사려야 한다. 하루하루 한걸음 한 걸음씩 거쳐가면서 작은 씨앗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세상을 밝힌다. 씨앗이 꽃이 되기 위한 길에는 급행 열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씩 피어나는 뜨거운 열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 씨앗이 꽃이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느리지만 겪어야 되는 시간. 그 시간이 결국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아름다운 색을 뽐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빠른 도착을 위해서, 혹은 꽃만을 보기 위해서 중요한 시간들을 건너뛰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 힘든 시간을 지나오지 않은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시간을 지나지 않은 꽃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급행열차는 어쩌면 도착 시간을 많이 줄여주지만 더 중요한 마음 같은 것은 두고 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꽃을 보기 위해 건너뛰다 보면 어쩌면 눈 앞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이미 시들어버린 꽃가루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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