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은 깨지기 전에 깨지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유리잔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었다. 멀리서 보면 예쁘고 아름답지만, 가까이 둘수록 조심스러워지고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특성이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겐 언제나 제일 어려웠던 인간관계처럼 유리잔은 어쩐지 쓰기 늘 겁이 나고 두려운 것과 같았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게 되었던 나는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사회생활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본 세상은 합리적이었고, 생각의 사고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그렇게 말해야 했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었고 명분이 있었다. 내가 배운 관계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생성되었다.
하지만, 사회에 홀로 내버려두게 된 이후 나는 많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내가 겪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았고,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면 자신의 이유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모난돌은 정을 맞았고 난 자주 그들에게 모난 돌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약속에 늦거나, 별것도 아닌 걸로 후배들을 괴롭히거나, 군기를 잡을 때도.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란 합리적이지 않았고 목소리가 큰 누군가는 혹은 정치를 잘하는 누군가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있었다.
내겐 그런 모든 것들이 어려운 것들이었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못하게 되었고 외톨이처럼 점점 혼자 지내는 일도 많아졌다. 인간관계가 유리잔 같다고 느낀 것은 아마 쌓이고 쌓인 내 감정들이 찬장에 담긴 유리잔들에 투영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깨져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고, 오래 시간 시선을 돌리면 얼룩 쌓인 먼지가 쉽게 지워지질 않았다. 결국 쓰는 컵들은 정해져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컵을 열심히 닦아내야 했다. 자주 만나지도 않으면서 연락을 돌리던 그 사람들처럼...
깨진 유리잔에 함부로 손을 내밀다가는 상처가 쉽게 낫듯이, 부서진 관계를 이어 보기 위해 손을 내밀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더 많았다. 누렇게 떠버린 유리잔을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수많은 연락처에 눌려 멀어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 연락처 목록에는 제 이름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내 손가락은 쉽사리 그 이름들로 다가가지 못했다. 우리 사이에 이미 얼룩처럼 누런 유리잔이 존재했다.
선반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 컵들처럽, 연락처 목록들 사이에 가득 담겨버린 그 사람들이 이제는 이어보려고 해도 예전 같은 웃음을 짓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나는 종종 아프다. 깨진 유리잔에 베어버린 것도 아닌데, 자꾸만 심장 언저리가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