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나란 놈은 한번도 휴학을 한적이 없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고 쉬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쉼 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많이 닮은 나는 쉬는 것이 점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요즘애들(?)이라면 다 간다는 어학연수도 간적이 없었으며, 휴학을 하면서 스팩을 쌓는다거나 하는 무모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쉼 없이 했고, 아르바이트로 벌은 돈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 샀다. 학비 외에는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아서 아마 더욱 자립심이 크고 제멋대로 자란게 아닐까 생각도 가끔은 든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 개념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는 사람은 또 아니었다. 성향상 번잡한 것 사이에서 질서를 찾는 것을 좋아했고, 무언가 틀에 잡히는 것을 싫어해서 시간표대로 사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렇지만 하루를 꽉꽉 채워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함 마음에 제대로 된 하루를 보내지 못한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딱히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기에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가보니 요즘은 잘 못 살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왜 그때 더 놀지 않았을까. 왜 그때 더 쉬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후회 같은 것들을 되씹어 보곤 했다.
군대가기 전에 알바비를 모아서 첫 해외 여행을 떠났었다. 우리집안에서 배낭여행으로 해외를 간 것은 내가 처음이었고, 모두가 나를 괴짜처럼 다루었다. 우리집안에 태어나면 안될아이가 태어난 듯, 나는 집안에서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어딘가 튀어나온 아이였다. 내 첫 해외여행은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세상은 넓었고 새로운 것들 천지였다. 그 후 나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친구를 꾸리고 새로운 도시로 어떻게든지 나가려고 애썼다. 여행지에서도 쉼은 없었다. 무언가를 보고 계속 걸어다니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일상에 지친 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리고 더 새로운 것을 입력하지 않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취업에 지치고, 일상에 지치는 현대인들에게는 작은 쉼표가 필요할지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방법으로 숨을 고르고 지친 몸에 휴식을 준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곰곰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정신없이 달려온 몸에 휴식을 주면서 일상의 쉼표가 당신에게도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