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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05. 2018

노란머리가 뭐 어때서

친구를 오랜만에 단 둘이 만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만난지 10년이 다되어가면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친구 S의 머리는 지난달 장례식장에서 마주쳤던 것과는 다르기 노란 머리가 되어 있었다. 무언가 새로워진 것 같아서 빤히 쳐다보니까, 본인의 머리를 만졌다. "아... 머리가 바뀌었구나!!" 굉장히 잘 어울렸고, 뭐랄까 외국인 같은 느낌이 나서 신기했다. 내가 자꾸 쳐다보니까 어색했는지 빠르게 저녁을 먹으러 발걸음을 돌리고 내 등을 밀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는 사람들의 소식도 전하고 술도 조금씩 기울이다가 문득 물었다.

"왜, 갑자기 염색한거야?" S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아니면 앞으로는 못할 것 같아서" 그 말이 굉장히 가슴에 깊게 박혔다. 지금이 아니면 못한다. 왜 못할까를 생각했을 때, 우리는 해서는 안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30이 넘은 처자가 머리가 노랗게 염색 (사실은 탈색한 것이라고 말했다.)되어 있다면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S는 머리를 하기 전까지 굉장히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라면 과연 언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이 되어도 안된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이런 돌발행동을 하는 S이기에 S의 아빠는 어느정도 이해해주었지만, S의 엄마는 며칠간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S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은 것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하는 부모를 보았을 때 섭섭했을 것이다. 그들만은 온전히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원했을텐데 아니면 한번이라도 물어봐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부모에게는 어린아이처럼 보일테니까 말이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장거리 여행을 가자고 꼬시곤 한다. 다들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하고 당당하게 휴가를 내라고 한다. 각 회사의 사정에 따라서 휴가를 쉽게 낼수도 못낼수도 있지만, 사실 어느회사던 그 친구 하나가 5~10일 없다고 해서 망하지는 않는다. 정말 중요한 업무도 사실은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낼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면서 여행팀에서 빠진다. 그럴때마다 참 가슴이 아팠다. 사회적인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당사자가 더 힘들 것이다. 늘 나는 "야, 욕 먹는건 잠깐이지만 지금 아니면 이 멤버로 그 장소로 갈 수 없어." 라면서 그들을 꼬신다. 분명 좋은 멤버고, 분명 가고 싶은 곳이다. 그들도 알지만 할 수가 없다. 사회가. 직장의 월급쟁이의 마음이 늘 그렇다. 


처음 남미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40명의 멤버 중 고작 3명의 친구들이 함께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부럽다. 나도 가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이야기 했다. 회사 때문에, 공부 때문에, 상황이 안좋아서... 기타 등등의 사연들이 난무했다. 이번에 몽골 여행을 떠났을 때는 7명의 친구가 함께했다. 감사했고 두려웠다. 그들의 용기를 칭찬했지만, 혹시나 나 때문에 회사에서 사회에서 욕을 먹는게 아닐까 겁이 났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몽골에 갈 때의 두려움보다 더 많은 행복을 품에 안고 왔다. 두려움을 이기면 작은 행복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들을 하자. 노랑 머리가 뭐 어때. 가끔은 빨강 머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는 나이가 들어서도 머리가 노란색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은 두려운 일들이 사실은 하고 나면 별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도 못한다. 기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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