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수업시간에는 늘 장래희망이 되는 칸이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적는 칸.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칸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적는 칸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적거나 남들이 많이 적는 것을 적는 칸이었다. 커서 무엇이 될 건지를 알려주려면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들이 있고, 그 직업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줘야한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 사회는 늘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배워야하는지는 알아서 찾으라고 한다. 알아서 찾아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 길을 안내해줄 수는 있는데 안내를 해줄 멘토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길이 있다고 어릴 때 부터 가르침을 받는다면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뭐 단지 아쉬울 뿐이다.
요즘의 이런 내가 제일 고민하는 것은 '커서 뭐가 될까?'이다. 나이 30이 넘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들이 이상해하는 기분을 잘 알지만, 나는 도통 모르겠다. 향후 내가 무엇이 될지가 말이다. 이런 고민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어떤 여행을 다녀왔고, 생각이 많아졌고, 과거와 미래를 비교하게 되었다. 가진것은 없는 나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나. 그게 지금의 내 현재의 모습이었다. 직업이 있지만 그게 나를 정의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무함과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불안감도 나를 휩쓸었다.
암흑기는 잠깐이었고, 우울에 빠질 만큼 충분히 빠진 후 나는 생각을 해야했다. 생각, 그리고 또 생각. 무엇이 되어야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생각하는 것과 생각을 행동으로 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생각만으로도 실패가 되는 것을 행동하지 않는 것과, 행동을 통해서 실패하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삶의 멘토는 없다. 아직 나의 삶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또 누군가에게 내 멘토가 되어달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혼자 이렇게 내 앞길을 걸었고, 주변의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훔쳐서 배웠다.
이제 향후 5년 10년 뒤의 내 모습을 내가 정해야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이것저것 다 건드리면서 방황할 수도 없다. 커서 뭐가 될까? 답은 없다.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끊임없이 정진해야한다. 겸손해야하고 거만하지 않아야 한다. 시선을 언제나 넓게 보고 다양성을 익히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책이 나의 멘토인 만큼, 책에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상들이 있다. 읽고 또 생각하고 정리해야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벽돌을 쌓는다. 이 벽돌이 성이 될지, 그저 벽으로 남을지는 모르지만, 벽도 의미있는 벽이 될 것이고 성도 아름다운 성이 될 수 있게 노력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