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모르는 그대들에게
직장인의 삶은 초침이 늘어난 시계와 같다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맞고 오후에는 자꾸만 늘어지는, 마치 출근시간은 일정하고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퇴근길에는 마주치는 사람이 적다. 늘 다른 시간에 집에가니까. 아니면 가끔 소주 한잔에 인생을 털어넣기도 하니까.
하지만 오전 출근길에는 늘 비슷한 시간대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같은 시계의 삶을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나를 스쳐지나간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내 주변에 머무는줄. 언제나 같은 시간에 내 시간을 스쳐지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한 곳에 작은 점을 계속 찍다보면 번져나가는 잉크때문에 점이 커지듯이 매 시간 출근을 할 때마다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 봤던거 같은데?"가 시작이었다. 그 후 "오늘 또 보네?" 가 되고 그 다음에는 괜히 속으로 반가워진다. '너도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구나' 묘한 동질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지나게 되면 그들은 이미 이름을 모르는 친구가 된다. 혹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참여하는 전우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름은 모르지만, 친구보다도 더 자주보게 된다. 오늘의 패션은 어떤지 속으로 말을 걸기도 하고, 평소와 다르게 차려 입으면 괜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늘 보이던 시간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오랜시간 보이지 않으면 휴가를 갔나보다 하는 부러운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참 묘한 오지랖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또 인사를 보내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면서도 서로를 인지하는 기분이 들고,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것만 같다. 최근 늘 8:25분경에 보이던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출근 시간이 바뀐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디서든지 그 친구의 삶이 안녕하기를 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동안의 우정을 (혼자) 쌓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