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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18. 2018

익숙한 것이 나를 베어올때

누구나 베이면 아픈 법인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실행할 때 두려움과 기대 혹은 흥분을 느끼지만 익숙해지게 되면 무뎌지게 된다. 그리고 자주 하던 것들은 익숙한 마음과 언제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만심이 생기게 된다. 특히 매일매일 반복되는 행동들은 더욱 심하다. 이런 종류의 예는 매우 많지만 남자들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이 발생시키는 사건 중 하나는 면도가 아닐까 싶다.

주말 오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다가 면도날에 콧잔등을 베여버렸다. 아무생각 없이 턱과 코주위의 거품을 면도기로 쓱쓱 밀었는데, 아차하는 순간 인중 근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픈 것보다도 물줄기에 섞여 흐르는 핏방울이 꽤나 낯선 기분이 들었다. 늘 하는 기본적인 행동에서도 나는 상처가 날 수 있구나 하는 지독하게도 외로운 생각이  핏물처럼 내 몸 여기저기 떨어졌다. 그러다가 익숙한 상황에, 관계에, 말투에 떠나간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때 떠나간 그 사람들도 이렇게 스치듯 상처가 나서 핏방울이 떨어졌을까. 아니면 많이 아팠을까 하는 쓸데없는 잡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지 말라." 특히나, 연인 관계에서 자주 들리는 문장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고 스스로 권태기라 생각이 들때마다 친구들이 조언처럼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분명 그 누구도 모른다. 익숙한 것들이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자주 반복하다보니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익숙한 것들은 면도날처럼 늘 칼날을 세우고 있는데,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늘 안전할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린 아무렇지 않게 뱉어지는 말들에 의해서, 행동에 의해서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대를 상처주기도 한다. 피가 나기 전에는 상대가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는 뱉어진 말들이, 행동들이 아프다는 것을 가늠할 수 없다.




겉으로 베어진 상처들은 따끔거리고 아프긴 하지만 금새 아문다. 흉터가 남을 수는 있지만, 더는 아프지는 않다. 하지만, 말들에 의해서 베어진 상처는 흉터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오래동안 아프다. 언제 낫는지 가늠할 수도 없으며, 나았다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아파질 수도 있다. 피가 나지도 않아서 지혈할 수도 없기에 그저 심장을 꽉 죄고 있거나,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기어 아픔을 잊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처를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 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어디서 누구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아픔을 치유해야할까?


사실 꼭 누군가에게 치유를 받아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 혼자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는 방법 역시 존재한다. 물론, 이런 상태가 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이 아파보아야하고, 세상은 지독하게도 결국 혼자라는 것을 뼈 속 깊이 새기면서 깨달아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아파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해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이 여리다. 우리는 누군가를 잘 믿게 된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 생각이 들게 되면, 내 모든 것을 주고 내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매일 면도를 하는 것 처럼 내 사람이 매일 내 편이라고 당연시하게 생각한다. 면도에서 다친 상처는 따끔 거리고 아프다. 살이 베어지고 아무는 동안 세수를 할 때마다, 로션을 바를때마다 아프다. 하지만 금새 딱지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서 잊혀진다.




하지만, 연인에게 베인 상처는 오래동안 아프다. 아픔에 무뎌지고, 눈물에 익숙해질 때 쯤에 새살이 돋듯이 새 사람이 나타난다. 이 사람이면 되겠지 했는데, 가끔 그런 사람들도 무심코 당신을 상처줄 수 있다. 상처에 익숙해지고 강해지자. 무심한 말이지만 누구나 나를 상처줄 수 있고, 내가 누군가를 상처줄 수 있다. 하지만,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하자. 당신의 무심코 뱉은 말에 베였고, 무심한 눈빛에 울었다고 말해주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해줄 같은 행동을 그 사람도 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익숙한 것이 나를 베어오고 상처를 주고 피를 흘린다고 해도, 언젠가는 나을 것이고,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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