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땠을까
사실 연애에 대해선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닌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성적으로 관계를 생각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이성적인 생각 중 특히 질투라는 감정이 제일 쓸데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두산백과를 찾아보면 질투에 대한 정의의 요약이 이렇게 나온다.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敵意).
그 아래를 읽으면 바로 첫 문장의 시작은 이와 같다. 사랑의 한 형태로서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 같은 것을 말한다. 사전에서는 사랑의 한 형태로 질투를 말한다. 질투도 사랑일까에 대해서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질투가 심해지면 집착이 되고 그건 다시 상대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이라 생각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일이라 믿어왔다. 매년 의무처럼 보는 드라마 중 하나인 [로맨스가 필요해 2]를 보면 질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로맨스가 필요해 2]는 오랜 연인이었다가 헤어진 윤석현과 주열매 사이에서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면서 생기는 로맨스 드라마이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여러 회차 중 질투에 대한 회차를 제일 좋아한다. 거기서 남자 주인공 윤석현과 후배 작가 강나현이 질투의 정의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현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질투 안 해요?"
석현 "너 질투가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괜히 미워하고 시기하고 깎아내리려는 마음"
석현 "너 존재 허용적 사랑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냐?"
나현 "뭔데요 그게?"
석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 너 같이 무식한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의 기대, 자기 욕심, 나의 소유욕을 포기하고 있는 그 사람의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
이 말이 참 품위 있고 멋있다고 생각을 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나의 품 안에 강제로 넣지 아니하고 그 사람의 행동 모든 것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 다고 해도 내 품 안에 넣지 않고 사랑하는 것. 사랑의 궁극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다. 자만심이나 자존심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질투에 빠져들게 되면 나는 나를 잃어버릴지 모르니까, 그러면 나는 내 바다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없을 테니까. 로맨스가 필요해 2에서도 후배 작가 나현은 질투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석현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현 "뭐 별거 아니네요.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함유적 사랑하고 같은 개념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어떤 관계 내에서 지배를 당하기보다는 어떤 상호성을 이루는 방식. 또 내 욕심보다는 상대방의 안녕과 성장을 위해 관심을 쏟는 사랑 맞죠?"
굉장히 아름다운 관계이며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관계의 사랑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드라마에서도 나현은 이런 사랑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니까.
나현 "차라리 질투를 해요. 선배 좀 미친 거 같아요."
석현 "미쳐?"
나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석현 "나는 보통을 뛰어넘는 사람이야."
나현 "아니 진짜 못난 거죠. 부끄러운 거야 질투하는 게, 그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하죠. 진짜 못난 거예요 그거. 자기감정에 충실하지 않는 거, 나중에 한 번에 무너질걸? 난 또 그 꼴을 어떻게 봐, 마음 아파서..."
나현이 예고했듯이 석현은 한 번에 무너지게 된다. 감정을 표출하게 되고 질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조금은 늦은감이 없지 않았다. 질투의 타이밍이 늦어졌고,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질투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윤석현의 말에 힘을 실었는지 모른다. 서로가 질투하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언제나 평온하게 마주하는 사랑,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싸우고, 치고받고, 다투고 울고불고하면서 마음에 상처가 생기게 되는 사랑은 슬프니까. 부끄러운 것보다는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질투를 하고 내 것인지 확인받으려고 하면서 소유하고 싶어 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그리고 상대가 이런 내 마음을 짓밟았을 때 상처받을 내 마음이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 질투가 난다. 당신에게 내가 없었던 시간이 궁금하다. 당신이 어떻게 웃었는지, 누구와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고, 어떤 사랑을 나누었는지가 궁금했다. 당신의 시간에 내가 없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 분하고 또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게 바로 질투겠지. 내가 없었던 당신의 시간들이 질투가 난다. 질투가 사랑의 한 면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이런 감정을 네게 말하면 너는 배시시 웃어줄까 아니면 집착이 심해진다고 두려워할까? 나는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다듬어서 네게 전달해야 할까. 여러 번의 사랑을 경험해보면서 웬만한 것들을 이제는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모든 것이 새롭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뿌리부터 어긋나는 기분이다.
내가 모르는 당신의 시간보다 내가 아는 당신의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함께 웃고, 울면서 질투보다는 더 따뜻한 감정들을 나누고 싶다. 가끔 이렇게 질투하는 내 모습을 당신은 귀엽다고 웃어주면서 안아주면 좋겠다. 그러면서 내 귓가에 날 가장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바라는 것 투성인데, 이 모든 바램을 네게 전할 수 있을까 싶다. 이런 나와 당신이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지만 내 바램이 너무나 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