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고 하네여.
2018년 8월의 끝에 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뉴스에 재난문자에 모두들 걱정의 소리를 높혔다. 사상 최대의 태풍이어서 피해가 클 것이다, 전봇대가 쓰러졌다, 사람이 실종되었다, 간판들이 날라다닌다는 등의 온갓 소문들을 들으면서 업무를 하는데 걱정은 태풍만큼 커져갔다. 평소에 비가 많이 온다는 뉴스나, 태풍이 온다는 뉴스에도 "뭐 그냥 다 지나가겠지... 자연재해는 원래 다 그런거잖아? 인간은 견뎌야하는거야"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나 외의 사람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이 삶 저 삶을 경험하고, 친구들 역시 비슷한 삶들을 경험하면서 연고지를 벗어난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깝지만 멀리, 각자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친했던 친구들이 많이 멀어졌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게 되었으며 취미를 공유하던 것들도 이제는 온라인이나 핸드폰을 통해서 말할 수 밖에 없어졌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한 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단단한 정(情)이 남아있어서인지, 자연 재해가 한국을 덮칠때면 의례 연락을 하면서 안부를 묻고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이번에도 태풍의 진로가 꺾이자 친구들은 태안에 사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출근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놓고는 빠르게 답장을 안한다고 "죽은거 아니냐" , "정말 큰일 난 것 아니냐" 호들갑을 떨었지만 애써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그들의 걱정임을 알았다. 태안은 멀쩡하다는 소식을 듣고 또 언제 모이냐, 누구네 집 집들이 가자, 제수씨는 잘 있냐 등의 시시콜콜한 대화로 오랜만에 단체방이 시끄러워졌다.
나도 같이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다가 문득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아, 왜 그놈을 잊고 있었지'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가 이번 태풍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데 언능 연락을 했다. "J야 잘 있냐? 무사하지?" J는 꽤나 그런 연락을 많이 받았는지 답장도 빨랐다. "ㅋㅋㅋ 아직 죽지는 않았어 윤씨 ㅋㅋ" 라는 매우 활기찬 느낌의 답이 왔다. 괜찮은가, 웃고 있는 척 하는 건가 싶어서 "다친데는 없고?"라고 다시 보냈는데 왠걸 돌아오는 답장이 아주 기가막히다. "나 지금 상하이야 다친덴 없고 살은 익음 ㅋㅋㅋ" 태풍에 오는 것 운좋게 휴가가 들어맞아서 지금 상하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고 상하이의 야경사진과 함께 답이 왔다. 아놔, 이자식. 뭔가 당한기분이 들면서도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아마도 말하진 않아도 무의식으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삼촌에게도 전화를 했다. "삼촌 전라도 지역으로 태풍이 간다는데 배들은 괜찮아여? 곧 추석인데 다 떨어지는 거 아니에여?" 삼촌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날 반겼다. "으~ 윤이냐~ 아따, 바람이 겁~~나 불어서 배들이 다 떨어졌을 것 같다. 워메~ 올해는 비도 안오고 아주 망해부렸다야" 위로와 건강하시라는 말과 함께 "또 찾아뵐게여"라는 먼 기약의 약속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낚시 한번 같이가자는 몇년째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점점 죄처럼 느껴져서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꽤나 먹먹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태풍이라는 변명으로 오랜만에 먼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바쁘게만 살아오다가 주변을 챙기지 못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어제 만난 것 처럼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가슴이 충만해진다. 이정도면 썩 나쁜 삶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같은 길을 걸었던 친구들인데 하나씩 나이를 먹으면서 길이 갈라졌다. 그래도 옆에서 걷고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나만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이 반갑다. 또, 언제 연락이 될지 모르겠지만, 약속처럼 빠른 시일내에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어라. 이까짓 태풍에 휩쓸려가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