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어떤 향이 나나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주로 가는 기차에 타면서 [향수]라는 책을 꺼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로 1985년에 발간된 책이었다. 책은 꽤 두꺼웠고, 초등학생이 보기에 쉬운 내용도 좋은 장면들도 아니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용돈을 받는 시스템에 살았던 나는 보물처럼 숨겨진 [향수]라는 책을 들고 시골로 가는 기차에 탔었다. 내용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고 누군가에게는 놀라울 수 있지만, 내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움과 동시에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강렬한 책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향이 없었던 주인공 그루누이는 자신의 향을 찾기 위하여 25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본인이 없는 것을 갖기 위한 광기와 몰입은 어린 내게는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내 살냄새를 맡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나도 향기가 없으면 어떡하지? 안 좋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더불어 내게도 나만의 향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어린 나이의 나는 늘 뛰어다녔기에, 땀냄새가 대부분이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 후 나는 향에 조금은 민감해진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을 향으로 기억하게 되었고, 내게서 좋은 향이 나기를 기도했다. 특히 새벽 수영 가는 날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새벽 수영을 가게 되면 하루 종일 몸에서 수영장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고 상큼한 향기가 코에 스며들었고, 수영장 냄새를 맡으면 하루를 뿌듯하게 채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게 맞는 향을 찾는 것은 내 몸에 맞는 옷을 찾는 일과 같다.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나한테 잘 맞는지 많이 입어보면서 확인하는 것처럼, 내게 맞는 향을 찾기 위해선 여러 향들을 내 몸에 뿌려봐야 했다. 향은 보이지 않는 옷과 같아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미지를 덮어 씌워야 한다. 또한 날씨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그날 입는 옷에 따라서 어울리는 향들이 다르기 때문에 내게 맞는 향을 찾는 노력은 어느 정도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한다.
인간의 두뇌에서 후각 신경계는 언어 중추가 있는 대뇌지역과는 직접적인 연결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후각에 대한 묘사를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원시적인 뇌변연계와의 연결고리는 제법 튼튼하다. 변연계라는 곳은 감정과 기억, 성, 식욕, 체온 등을 관장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왜 냄새가 감정과 욕망을 넌지시 암시하고 불러일으키는지, 옛사랑의 기억을 깨우고,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냄새로 인한 향수는 언어나 사고에 희석되지 않기 때문에 보는 것, 듣는 것처럼 쉽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문장을 후각 정보와 함께 주었을 때 더 기억력이 좋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꽤나 냄새에 민감하다. (나는 향기라는 말보다는 이상하게 냄새라는 말이 더 좋다.) 아찔하고 강렬한 기억은 다들 후각과 민감한 연결고리가 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으로 뇌에 각인을 시키는 것이다. 한번 냄새가 뇌에 각인이 되면, 그 기억이 몇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래 속에 뒤덮이게 되더라도 언제든지 파해쳐질 수 있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되던 모든 것들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과 같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재에 발현될 수 있다.
아마도 그루누이는 잊히기 싫어서 자신의 향을 갖기 위해 노력했었던 게 아닐까. 나를 기억해달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아무도 자신을 인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당신들과 같은 시간에 살았음을 소리쳐 부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향기를 남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가장 쉽게 각인되는 것은 그 사람의 향기라 생각된다. 좋은 향기가 났던 사람은 좋은 모습으로, 나쁜 향기가 났었던 사람은 안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굳이 향기가 코로만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품격, 행동, 말투와 눈빛까지도 향이 난다.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서 살냄새가 스며든다. 그렇게 사람들은 향기로 사람을 기억한다.
나를 잊지 말라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두라고 맡기 좋은 향기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좋은 품격으로 따뜻한 감성으로 나만의 향을 뿌려두는 것 역시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향기를 뿌려도 그 사람의 품격이 저렴하다면 절대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향기를 남긴다. 우리는 각자 언어로 정의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향이 있다. 내 작은 소망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좋은 향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너무 큰 소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