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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Sep 04. 2018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우리는 남이었다.

누구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도 먼저 바라봐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일상에 스쳐 지나가는 소중함 중 하나가 아닐까? 내 목소리에 반응하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있을 것이다. 호기심, 짜증, 상하관계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이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누구나 쉽게 잊어버리는 가치 중 하나라 생각한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우리는 각자 피어나는 들꽃처럼 모두 남남이다. 이름을 불러주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생기고 온전한 내가 되어 나를 불러준 이를 바라보게 된다. 문득, 이름에 대해서 사전적으로는 어떻게 정의가 되는지 궁금해졌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람, 사물, 현상 등에 붙여져 그 전체를 한 단어로 대표하게 하는 말이다. 수수께끼에서는 자기 것인데 남이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쓰임에 따라 평판이나 명예 또는 명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무위키에서 정의하는 이름의 뜻이다. 그 전체를 한 단어로 대표하게 하는 말, 너무나 소중한 말이 아닌가. 나의 것인데 남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 이름은 나를 정의해주지만 나보다 다른 이들이 불러주는 목소리와 감정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살면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이름은 약간 독특했다. 보기 힘든 이름이었고, 발음하기도 꽤나 어려웠다. 집안의 돌림자 때문에 내게 주어진 이름이었지만 어릴 때 나는 내 이름을 퍽 좋아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선생님이 내 이름을 헷갈려했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도 이름보다는 애칭으로 불리는 게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름에 대해서 굉장히 깊은 상념에 빠진 적도 있었다. 왜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가 어린 나이에 꽤나 많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나로써 존재가 가능하다.


그런 내게도 정확하게 이름이 불릴 때가 있었다. 바로, 혼날 때였다. 혼날 때는 어쩜 그렇게 크고 또랑또랑하게 불리는지 모두가 다 내 이름을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별명도 많이 생겼고, 친한 친구들은 편한 별명으로 딱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름으로 불려지는 게 익숙해졌다. 크게 이름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크게는 없었다. 너무나 익숙했고 당연했기에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게 되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불려지는 이름이 소중해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름의 뒤에 붙어오는 계급의 명칭이나 별명 등에 더욱 집중했었지, 온전히 내 이름만으로 불려지는 것은 소홀해졌었다. 집에서는 누군가의 아들, 학교에서는 선배 혹은 형,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불려 왔지 내 이름 자체에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당신과 처음 만나서 서로의 이름을 교환하면서 입으로 오밀조밀 당신의 이름을 만져보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우리는 서로 남남이었다. 일면식이 없던 사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면서 한 걸음씩 상대에게 가까워졌다. 조금 더 자세히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서, 당신의 이름 사이에 묻어있는 삶의 흔적들을 표정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늘 일상적으로 들었던 나의 이름이지만 당신이 불러주면 무언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찰흙처럼 당신의 이름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어디쯤에서 당신의 유아기가 있었을지, 어떤 획에서 당신이 슬픔을 감추기 위한 웃음을 지었을지 상상을 해보고 세 글자의 이름에 당신의 이미지를 담았다. 그리고 당신이 내 이름을 음미하듯 되내였던 목소리를 생각했다. 공기에 이름을 적듯이 한글자씩 발음해보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몽롱하게 울려퍼졌다.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나의 이름이, 당신의 목소리로 인해서 꽃으로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명명(命名)하는 것, 흔하디 흔한 단어들을 합쳐서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대의 가슴에, 기억에 담아주는 것,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흔하게 생각했었던 나의 이름이 당신으로 인해서 새로워질 수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 순간, 가슴에 담았고 심장에 박아두었다. 언젠가 어느 시간이 지나도 당신을 생각할 때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 옆에 서 있는 내 이름이 퍽이나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나의 것인데 남들이 더 자주 하는 말, 그 단어가 당신의 입에서 익숙해지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 생각하며 김춘수 시인의 꽃을 남겨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이가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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