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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Sep 19. 2018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서

시간이 지나니까 생각나는 것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에 돌아가셨다. 90세가 훌쩍 넘는 나이에 아프지 않으시고 주무시다가 조용히 먼길을 가셨다. 흔히들 말하는 호상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우리는 급하게 열차 티켓을 끊고 시골로 내려갔다. 검은 창밖을 보면서, 아끼는 니트를 입으면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렇게 다급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처음 들어간 장례식장은 너무나 조용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시끌시끌한 장례식은 아니었다. 이미 증조할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다 너무 늙었거나, 먼길을 먼저 가셨다. 남아있는 핏줄만이 증조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할 뿐이었다. 어른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집안의 장남인 친척동생이 검정 양복을 입은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니트인데, 쟤는 양복이네'



증조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사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향이었다. 할아버지 특유의 향, 오래된 한복의 향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노인의 냄새. 나는 그 향이 어쩐지 꺼림칙해서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래도 증조할아버지는 멋쟁이였다. 늘 외출할 때 갓을 쓰고 나갔고, 언제나 현관에는 흰 고무신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1시간이 넘는 도심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가실 정도로 정정한 분이셨다. 소주를 사발채로 드셨고, 며느리인 할머니와 오래오래, 자주자주 싸웠다.


90세가 넘으셨을 때는 며느리인 할머니와 싸운 후에 울산으로 3개월간 가출을 하는 멋진(?) 행동을 하셨으니, 요즘 보기 힘든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증조할아버지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네가 첫째냐? 둘째냐?" 몇 달이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마주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이었다. "제가 둘째입니다." 딱딱한 대답을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날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멀리했다. 내 기억력과 그분의 기억력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때 나는 그게 딱 우리의 거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첫째인지 둘째인지를 묻고 더는 질문이 없는 관계, 나는 증조할아버지의 한복 향기만큼 할아버지와 가까워지지 못했다.



증조할아버지의 시신의 관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 모두는 그 자리로 불려 갔다. 깨끗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는 평온하게 주무시는 듯했다. 멀리 떠나버린 육체에서는 반가운 인사도, 흔한 질문도 없었다. 40~50년간 며느리로 지낸 할머니만이 서럽게 우셨다. "아이고 아버님, 아이고, 이리 말없이 아이고" 할머니는 굳어버린 허리만큼 낮은 자세로 우셨다. 나는 할머니처럼 슬프지 않았다. 그때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장례식을 간 적이 없었다. 첫 장례식장은 군대에 들어가고 자대 배치를 받고 몇 달 뒤였다. 어이없는 사고로 젊은 청춘들이 죽었고, 우리는 영결식의 조총병으로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그때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부모를 두고 먼저 떠나는 자식의 입장에 공감하며, 부모들의 비통한 울음소리에 속으로 울면서 하늘로 총을 쏘았다. 너무나 억울한 울음들, 너무나 비통한 소리들,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그저 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오랜 시간, 아니 평생 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이라도, 우리에게 뜨거운 심장이 흐르는 한은 이별이 아픈 것이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 시간이 내겐 꽤 오래 걸렸던 것뿐이었다. 그 후 사람 관계가 더 소중해졌고, 사람 관계에 더욱 신중해졌다. 아니 어쩌면 차가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온전히 정을 다 주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별의 아픔을 아는 만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던 것 일이 지도 모른다. 남겨진 자의 슬픔을 여러 상황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만큼 관계의 기쁨과 행복을 외면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별의 아픔, 곁에 있는 자의 부재는 절벽에 떨어진 듯한 외로움을 건네주고, 심장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던져준다. 하지만, 남아있는 자들은 이전의 행복한 기억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법이다. 이별의 화살이 심장을 쏘아서 눈물이 나게 했다면, 남은 추억들이 그 상처를 메워주면서 치유해준다. 지난 시간이 앞으로의 시간을 감싸주는 아이러니한 삶이 계속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이별을 슬퍼하며 미리 도망치지 말고, 최대한 많이 행복한 시간들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떠나도 슬픔이 잠깐이었으면 좋겠고, 내가 그들을 떠나도 슬픔이 잠깐이었으면 좋겠다. 다만, 뒷 웃음들이, 생각이 났을 때 떠오르는 웃음들이 오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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