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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Sep 14. 2018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해의 중간에 있던 6월, 친구들과 함께 몽골 여행길에 올랐다. 모두가 몽골을 왜 가냐고 물었을 때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언젠가부터 가고 싶었고, 별이 보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친구들에게 별을 보러 몽골에 가자고 했을 때 모두가 별을 담은 눈빛으로 자신들도 가겠다고 손을 들었고, 우리는 그렇게 10일의 몽골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몽골은 폭우로 연착이 된 기억이었고, 한참 자동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불빛은 보이지 않는 산 속이었다. 매서운 바람과 내리는 빗방울, 우리는 한치 앞도 안보이는 곳에서 그저 '정말 몽골에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짐을 옮겼다. 첫날밤은 게르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의 기억이 전부였다. 아, 무서운 바람소리와 너무나 뜨거웠던 난로까지도.


둘째날 숙소는 원래 가기로 했던 곳에서 벗어나서 꽤나 낙후된 시설로 안내되었다. 여행의 묘미는 늘 계획되로 되지 않는 것에 있지 않는가?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우리가 가려고 했던 숙소가 자리가 없게 되었기에, 우리는 한참을 떠돌다가 겨우겨우 빈 게르가 있는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게르의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고, 우리는 우리만의 놀이로 즐기자고 하면서 노래를 틀고, 노을을 잔 속에 기울이며 춤을 추었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과 차곡히 쌓여오는 어둠 속에서 놀고 먹다보니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숙소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화장실이었다.


저녁을 먹다가


한국말이 유창했던 가이드는 우리에게 한가지 주의사항을 안내해주었다. "애들아, 한가지 주의할게 있어! 밤에 화장실을 갈 때는 무조건 둘이서 같이 가야해, 몽골의 밤은 어둡고 화장실이 멀어서 길을 잃기가 쉬워. 알았지? 그거 하나만 약속해!" 우리들은 이미 반쯤 취해있었기에 뭐가 걱정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밤이 되어 화장실을 가려고 하니까 가이드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몽골의 밤은 추웠고, 하늘에 별들이 소금처럼 박혀있었지만 저 멀리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까딱하면 길을 잃기 쉬운 어둠이었다.


우르르 화장실에 몰려갔던 친구들은 화장실이 낭만적이라고 몽골 좋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별이 떨어지는 곳 아래 화장실이라니! 낭만적이야!"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속세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찬사하면서 술잔을 밤새 기울이고 별 사진을 찍으면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필름카메라로 추억을 남겨본다.


아침이 되고 나니, 아름다웠던 별들은 보이지 않고 따가운 햇빛과 수도시설이 없어서 씻지 못하는 우리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아침 볼일을 보고 온 친구들은 12시간도 안되어서 찡그린 얼굴로 다가왔다. "으~ 화장실 완전 구려, 파리때와 응아냄새, 그리고 튼튼해 보이지 않는 나무 판과,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덩어리들... 으~~ " 별이 떨어지는 낭만적인 화장실은 어느새 사라지고 파리와 냄새가 가득한 몽골의 현실 화장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얼굴을 찡그리다가도 또 웃었다. 어쩐지 모르게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당나라로 학문을 익히기 위해 길을 떠난 원효대사는 동굴에서 하룻밤 머물다가 타는 갈증으로 바가지에 들어있던 시원한 물을 마셨다. "참 달다~" 생각했던 물이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해골물이었고 구역질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진리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찾아야한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가던 유학길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였다.


못 씻어도 우리는 즐겁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외쳤다. "몽골의 아름다움을 알게해서 감사했고,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대한 위인들의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겪었던 것 처럼, 우리 역시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단지, 일어나는 사건들을 우리가 마음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아름답다 생각하면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다고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아름답지 않다. 모든 아름다움과 진리는 눈에 보여지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자들에게만 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징그럽다, 더럽다 하는 것들 역시 몽골에 사는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일들이어서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판단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제나 멀리 바라볼 수 있으며 보여지는 것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 후, 우리는 남은 여행 내내 "감사하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함께한 모든 여행의 시간들이 다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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