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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21. 2018

노약 좌석에 앉아도 될까요?

다리가 아파서...


축구를 하다가 살짝 발목이 접질렸다. 티가 나게 아프진 않았는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지라 지하철역까지 가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타는 마을버스였는데 버스카드를 찍자마자 퍽이나 난감했다. 일반 좌석은 사람들이 다 앉아있고 노오란 커버가 씌어진 노약 좌석만이 비어있었다. 하지만, 내가 난감했던 부분은 겉으로 뵈기에 노약 좌석에 앉으셔도 되는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다들 맨 뒤의 일반 좌석에 앉아계신다는 거였다. 나는 발목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겉보기엔 굉장히 건장해 보이기에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며 노란 커버의 의자에 앉았다. 뒤로 정거장마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타면서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꽤나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버스를 통해 느껴서 그런지 지하철을 탔는데도 어르신들은 노약 좌석보다는 중앙 자리에들 앉아 계셨다. 뭔가 섞여 있는 모습이 보기 나쁜 건 아니었지만, 왜 내가 보기엔 노약 좌석에 앉아도 될 것 같은 분들이 저기에 앉아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58년 개띠들이 이번에 65만 명이 은퇴를 하고 그 이후 70만 명이 넘게 매년 은퇴를 하면서 노년층이 늘어난다고는 들었는데 혹여나 그런 여파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일부러 저렇게 하시는 건가 하는 나쁜 생각이 제일 먼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은 나의 잘못된 시선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나는 그분들을 노년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육체적으로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쇄했을 수 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고, 육체의 주름들은 숨길 수 없는 자연의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육체적으로만 노화했을 뿐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들 힘든 시기에 태어나셔서 나라를 먹여 살리느라,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본인을 가꿀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까 어느새 청춘은 저 뒤에 멀리 두고 왔고, 닭똥 같은 자식들이 품에서 벗어나서 멋진 옷을 입고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을 바라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 열정을 뿜어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누가 늙은 것 일까?'란 생각을 했다. 육체는 건강하지만 늘어가는 실업률에 많아지는 업무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면서 의욕을 잃은 N포 세대일까, 아니면 육체는 노화하였지만 새로운 꿈을 가지고 인생의 두 번째 페이지를 작성하고 계시는 어른들일까. 마음이 꺾이면 의지도 기운도 다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죽은 동태눈을 가진 삶을 사는 청년들은 노약 좌석에 앉아야 할까 아니면 일반 좌석에 앉아야 할까. 나는 속에서부터 이미 늙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이 시작되었다.

반성은 짧고 굵게 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누군가를 겉으로만 판단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겉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애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보기를 원하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속이 먼저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절대 겉으로 늙었다고 해서 늙은 게 아니다. 노약 좌석은 나처럼 마음이 늙은 애들이 앉아야 하는 게 맞지 싶다. 그러니까 잠시 저 노약 좌석에 좀 앉아도 될까요? 발목이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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