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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내댁 Jan 22. 2019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단상 1


23살, 나는 공연장이 너무 좋은 공연 연출가 지망생이었다.


전공은 아니었지만, 공연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아카데미를 다녔다. 당시에는 3개월 코스였지만, 막상 배우고 보니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수료 후 일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니, 이 길은 또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공연장에서 일해야만 할 것 같아서 7년 전에 다녔던 아카데미에 다시 입학했다.


그 사이 세월이 많이 흘러 아카데미는 충무로를 벗어나 혜화로 옮겨져 있었고 교육과정도 세분화되어 장장 6개월간의 공연 연출과정의 재입학생이 되었다. 입학할 때의 마음가짐은 이젠 이걸 내 업으로 삼고 이 분야에서 장인이 되고 말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아카데미를 떠난 후로는 공연을 보지 않았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가득한 나였다. 더 이상은 내발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은 왜였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좋아하는 배우의 뮤지컬이 한 편 보고 싶었다.


20대가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나의 30대는 어떨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퇴근하고 간단히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우고 공연을 보러 들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데이트를 하러 온 연인들, 친구와,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멍하게 구경하다 공연장 문이 열리고 미리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사실 예전에 보았던 뮤지컬이라 스토리는 잘 알고 있었고, 음악이나 듣고 오랜만에 문화생활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도 지나고 2부가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공연장에서 나는 특유의 나무 냄새가 포근히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고 예전보다 음악과 볼거리가 풍성해져서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 남자 주인공의 솔로곡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예지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버렸다. 스토리 전개 상 슬픈 장면은 아니었고 오히려 앞으로를 다짐하는 굳건한 노랫말이었는데, 왠지 내가 계속 공연계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앞으로도 이렇게 싫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들면서 거의 2부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훌쩍이면서 핸드폰을 붙잡고 공연 아카데미를 검색했다. 길지 않은 인생, 지금 이 도전이 마지막일 거야. 해보는 거야. 내 인생인데 누가 날 책임져줄 수 있겠어. 그렇게 7년 전에 수료한 아카데미의 과정을 재등록했다. 정말 놀랍고 다행인 건 동기 중에 나와 동갑인 29살 친구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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