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men live by
재수 때만 해도 나는 아무데도 속해 있지 못한 내가 참 초라하고 절박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재수 초반에 재종 수업과 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동네 독재 학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그 지독한 고립감을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 있다
그게 끝이면 좋았으련만.. 10월 하순부터 몸과 마음 모두 엉망진창인 상태가 되는 바람에 난 그 독재 학원에서마저 짐을 빼고 집으로 돌아와 요양을 해야만 했다
고독하고 절박했던 그 시절의 내 일기에는 그렇게 써 있다
제발 대학에 가서 과제도 하고 동기도 사귀고 놀고 싶다고.
지금 보면 어딘가 짠한 대목이다
아침에 학원에 가기 위해 초라한 몰골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번듯한 복장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마주쳐야만 했다
그 번듯함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소속감과 분주함이 나를 더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그들의 향수 냄새, 말끔한 정장, 깔끔한 구두, 단정한 머리 스타일, 반짝이는 악세사리
그와 동떨어진
평범한 섬유 유연제 냄새, 평범한 반팔, 추레한 트레이닝 바지, 때 탄 운동화, 대충 물만 묻혀서 묶은 머리,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그들과 내 모습의 차이가 내 신세를 더 실감나게 했던 탓에 나는 고개를 떨구고 신발코만 봤다
살면서 한 번도 난 내가 외로움을 탄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그때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인간 같았다
예쁘게 차려입고 지나가는 내 또래의 여자, 해맑게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만 봐도 부러웠다
그들이 초라하지 않고, 적어도 어딘가에 속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감상이었다
그 고독감과 더불어, 나는 이번 시도에서도 대학에 붙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아무것도 보장돼 있지 않은 흐릿한 시간이었다
조금 이상한 결론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는 듯하다
그동안 나는 본인 의식주만 알아서 마련하면 어떻게든 혼자 살 수 있으며 인간은 성가시고 피곤한 존재이므로 혼자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해 왔다 또한 그런 자세로 인생에 임해 왔다 그러나, 재수 이후에 내 인생관은 조금 바뀌었다.
‘인간은 인간 없이 못 사는구나.. 무엇보다 소속이 없는 인간은 도태되어 끝내 불행해지는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모두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치만, 그 혼자만의 시간이 자의가 아님과 동시에 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명시되지 않으면 고독해진다(까다로운 자식!)
p.s. 인간은 역시 인간을 찾아야만 하나 보다
나 역시 그 나약한 인간일 뿐이고
또한 재수 생활은 나의 인생의 변곡점을 찍어준 것 같다. 재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만 10대들에게 재수를 추천하는 바이다.
기분 좋은 날엔 컨버스를 신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