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의 희귀의 희귀의 케이스인 인간
현재 나는 POTS라는 질환을 앓고 있다.
사실 더이상 설명하기도 귀찮고 지겹다. 정말 지겨워 죽겠다는 평이 이 병에 딱이다. 지금 내 상태도 그렇고.
인간들은 희귀한 거에 환장한다.
세계에 몇 개밖에 없는 명품백과 비싼 차, 상위 0.00000몇 퍼의 삶, 로또 1등,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이 모든 건 나에게 시시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다 가져서가 아닌, 그냥 내 흥미 밖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이미 내가 다 가지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이 환장하는 그 희귀한 것들을 말이다.
물론 그게 물질적인 게 아니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말이다.
일단 나는 집안 내 유일한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지금은 연이 끊긴 친조모의 유전일 가능성이 크다. 친조모는 한국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았기 때문에, 나를 오른손잡이로 교정시키려고 애썼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교정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때때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묻는다.
왼손잡이면 안 불편해?
그럴 때마다 나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감을 못 잡는다. 애초에 오른손잡이로 살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불편하고 안 불편하고를 어떻게 알아..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는 희귀 혈액형 인간으로 태어났다. RH- 형의 피만을 머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또한 집안 내 유일한 케이스. 내가 피가 부족해서 사경을 헤매더라도, 제가 얘 가족이에요 하며 멋지게 등장할 수혈자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피가 모자랄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있으면 뭐, 안 된 거고.
여기까진 세상을 털어 보면 꽤 다수인데? 싶을 태생이지만, 그것까진 고려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별 거 아니라고 넘기고 싶다면, 당장 당신 주위에 특이 혈액형에 왼손잡이이기까지 한 인간을 찾아봐라. 아마 하루는 고사하고 이틀째에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자랑 아님 이게 자랑이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그리고 POTS! 이건 내 몸이 지닌 또 다른 희귀 케이스이다.
한국어로는 기립성 빈맥 증후군.
요즘 의학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던데?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질환이다. 그냥 기립성 저혈압 정도의 취급을 하면 되니 말이다.
근데 이로 인해서 본인의 자율 신경이 빠르고 치명적으로 망가지고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나는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왔고, 그동안 쌓여온 것들이 POTS로 나타난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마저 쇠약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발단은 실신이었다. 정말 기억에도 없이 실신을 해 버려서, 구석탱이에 있던 나를 발견한 행인이 나를 살렸다. 나는 실신 경험, 그것도 기억에도 없던 실신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냥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나 보다, 했다. 쓰고 보니 정말 어이가 없는 생각이다.
그 뒤로 또 병원의 병원의 병원행이 이루어졌고, 검사 결과 뇌파엔 아무 이상이 없는 POTS로 결론이 났다.
그럼 치료를 하면 되는데, 이 치료마저 아주 독특한 친구였다.
그냥 약을 먹으며 경과를 보시죠.
국내 최고의 병원이 내놓은 진단이었다.
환자로서 향정신성 약물 계열의 권위자가 된 나는 이 진단에 매우 불만이 컸다.
아니, 내가 약을 먹고도 안 괜찮다는데 또 바꿔서 먹고 경과를 보자고요? 24시간 심장 어쩌구 체크도 ’환자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자고요?‘ ’하고 싶으면‘ ??? 전 이미 알 수도 없는 검사들에 제 한 달 알바비를 탈탈 털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약값은 왜 이 지경인가요?
따지고 싶었으나, 이내 체념했다. 잘나신 의사 나리께서 그렇다는데, 의사는 커녕 의대의 ㅇ자에도 접근 못해 본 개돼지인 내가 수긍해야지. 싶었다.
늘 그랬듯, 아무리 괴롭다고 실토해도 조현병 약을 주거나, 여긴 아까 이상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죽으면 안 되죠, 하던 보통의 의사를 만난 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걸 느끼며 그저 방치 중이다. 검사도, 결과 보고도, 그에 따른 처방도, 정기적인 검진도 다 집어치웠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 망가지는 몸을 느껴가며 열심히 방치 중이다. 좋은 의사가 나타난다고 해도 치료할 마음은 없는 것 같다.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아 하루 한 끼를 겨우 먹고, 그마저도 체하거나 얹히는 것이, 기어다닐 정도로 기력이 없어 동네 병원 링겔로 연명하는 것이, 돌연사 가능성을 안고 체념하며 사는 것이, 이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조차 모르겠는 것이,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게 더 힘겨워서 고통을 느끼며 무기력하게 그냥 방치하는 것이, 내일따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기억력이 나빠져 모든지 수첩에 적고 보는 것이,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는 체념이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도 약을 먹지 않는 삶을 즐기는 것 같다. 안아키가 아니라 그냥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경계 파괴와 비정형 중등도 우울증이라는 복합 요소가 오늘도 내 몸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이젠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조차 가늠이 안 돼서, 정신과 선생님도 약 처방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신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차피 쓸모도 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또한, 나는 매우 특이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누구의 유전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정신병의 영향일 수도
아주 해맑았을 어렸을 때부터, 나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아빠 머리에 오줌냄새 나라! 하며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대체 어디서 기인한 발상일까) 친형제 역시 나를 미친놈으로 부르기도 한다. (니도 그래)
현재도 나는 비슷한 정신세계로 살아가는 듯하다. 물론 고차원적인 번뇌와 괴로움, 반골기질, 학습된 사회성, 우울, 체념, 세상에 대한 회의가 더해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정신세계를 글에 반영하곤 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있는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일터 동료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변호해줬다.
변호일까 까기일까
아무튼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산다.. 그리고 이런 내가 희귀의 희귀의 희귀를 기한 케이스라는 확진을 받을 때마다 묘해지곤 한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다들 아니라고는 한다.
까면 깔수록 희귀한 게 나오는, 마트료시카 같은 내가 나도 참 신기하다. 그런 나를 요즘은 그냥 체념하고 산다. (친구 왈: 콩딱지스럽다)
또한, 내 글의 정신적 지주는 아르튀르 랭보인데, 그 또한 범상치 않은 일생을 보냈기에 마냥 내 정신세계를 비하하고 싶진 않다. 실제로 나는 그의 시를 보며, 이런 글을 쓰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는 희대의 천재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내가 좋은 듯하다. 사람들이 환장하지 않더라도 희귀해서 어려운 내가 좋다.
다들 희귀한 것에 환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고하고 싶다. 그런 것들은 희귀한 만큼 AS도 무척 어렵다고. 환불 또한 불가하고,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라고. 희귀성에 도취하기 전에 이 점을 꼭 유의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