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대리까지는 개인역량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싹싹하게 인사 잘하고, 납기에 맞춰 시키는 일 또박또박 해내고, 방향만 정해주면 원하는 보고서를 뚝딱 만들고, 매출데이터를 엑셀로 금방 가공해 오고, 회사에 큰 불평불만 없으면 보통 괜찮은 직원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과장부터는 다르다. 평가잣대 자체가 달라진다. 과장은 조직에서 첫 번째 리더 포지션이다 보니, 더 많은 책임과 권리가 따른다. 일 잘하는 과장으로 인정받고 나면 회사는 리더의 역량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임원이 되기 위한 첫 평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색깔 없는 사람은 대체된다. 무채색보다는 무지개색이 좋다. 조직에 들어가면 '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 '튄다'라는 의미는 개인의 개성과 의견을 너무 강하게 드러낼 때 듣는 말이다. 일부 맞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개인역량보다는 협력과 인화가 더 중요하다. 정년이 보장되던 아버지 세대에는 꼭 필요한 태도였다. 그러나 이젠 튀어야 산다. 뚜렷한 전문성과 일하는 방식의 차별성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는다. 재무는 김 00님, 영업은 이 00님, 인사는 박 00님처럼 특정 업무의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들려야 한다. 조직관리를 잘하는 사람, 전략은 없지만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 신사업 세팅을 잘하는 사람, 안 되는 사업을 살려내는 사람. 셀렙을 잘 맞추는 사람, 능력은 없지만 관계로 풀어내는 사람, 경영진의 심기를 잘 파악하는 사람 등 '나만의 대체 불가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적어도 임원이 되려면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핵심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과장부터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생활 초기 사무실 분위기는 시장 한복판이었다. 물론 영업조직이라서 더 그랬겠지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통화했고, 창문 유리에는 사업부장님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 깨진 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캐비닛에는 누군가 내려친 주먹 자국도 있었다. 나도 협력사와 동화하다가 전화기를 던져 부수어 버렸고, 구성원과 얘기하다가 다이어리를 벽에 던져 종이가 여기저기 흩어지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일 잘한다고, 리더십 있다고, 카리스마 넘친다고 칭찬했다. 여성의 나약함을 감추려는 억지이자, 직위를 무기로 한 횡포였다. 목소리가 좀 크고 시끌벅적해야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으로 봐줄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만약 지금 그렇게 행동하면 회사 내 괴롭힘으로 며칠 내에 퇴사를 당하거나, 블라인드의 핫한 주인공이 될 것이다. 지나고 보니 참 부끄럽기도,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당시 사회가 그랬다. 좋은 리더란 구성원들의 동기를 끌어내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 사람이다. 역량은 기본이고, 소통이 잘되어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직원들이 따르지 않는다. 모티베이션을 끌어낼 수가 없다. 과장부터는 리더십을 회사에 조금씩 보여주면서 입지를 단단히 다져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면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가 조금씩 생기고, 중은 소문이 회사에 퍼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맡은 일만 잘 해내는 사람'이어서는 안 되고, 주변 선후배들도 살필 줄 아는 사람 말이다. '000님은 맡은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자기 일만 여우같이 해내고, 그 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어.'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처럼 들렸다. 당시 마케팅업무를 하다가 영업으로 업무를 바꾼 시기여서 지독한 텃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성과내서 인정받고 싶었다. '맡은 일을 잘해줘도 지랄이야. 더 큰 일 맡겨봐. 그것마저 잘 해낼 테니. 맡기지도 않고 말들이 많아?'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교만했다. 누군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어하는 선후배들을 다독이고, 고민 많은 팀장과의 중간 역할을 더해주면 더욱 훌륭한 리더가 되지 않을까?'라는 조언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게 질투이자 뒷세로만 느껴져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성과를 내려고 앞만 보고 달렸고, 회사 일이 끝나면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보다. 뒤돌아보니 참 아쉽다.
전문성을 갖춰 나만의 색깔을 찾고, 자발적인 동기를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이며, 따뜻한 포용력을 갖춰라.
임원이라는 목표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