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재직기간은 3년 남짓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전 직장 7년, 현 직장 4년째 임원이니,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계속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남들과 다를 줄 알았다. 오래오래 다닐 줄 알았다. 인생의 중심은 언제나 회사였고, 매번 주어진 미션에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나 보다. 많이 경험했고, 많이 배웠고, 많이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몇 가지 후회가 남는다. 임원을 꿈꾸고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정치를 좀 잘할 걸 그랬다. 정치는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한 많고, 의견을 주도하는 사람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리더가 되면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정치가 꼭 필요하다. 그 점을 간과했다.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성과만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도 못 가면서 진두지휘했던 수많은 미팅과 의사결정의 과정을 모두들 알거라 착각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노력과 열정을 보고 있으리라 믿었다. 시간을 쪼개 우리 조직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으며, 어떤 고민이 있고, 어떤 계획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했다. 성과만 내면 되겠지 하는 독야청청한 순진함이 있었다. 구성원들 입장에서도 직속 리더가 혼자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파워 있는 조직장과 친해서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더 안정감을 주었을 거다.
외부 인맥관리에 더 시간을 투자할 걸 그랬다. 실무적인 성과를 내는데만 집중하다 보니, 외부인들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만날 필요도 없었다. 계열사와의 교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간혹 협력사 미팅이나, 개인적인 모임정도가 다였고, 외부 전문가나 다른 영역 사람들을 만나고 챙기는 일에 소홀했다. 막상 회사를 떠나고 보니 찾아주고,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은 주로 외부에 있던 사람들이더라. 참 바보처럼 일만 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배울 걸 그랬다. 그랬다면 더 넓은 시야가 생겼을 것이고, 명함이 없어진 후 방황의 시간은 크게 줄었을 것이며,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골프를 빨리 배울 걸 그랬다. 처음에는 골프가 정말 싫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휴일에도 나가야 하니 가족들의 눈치도 보였다. 그 작은 구멍에 공 하나 넣겠다고 멀리서부터 용쓰는 자체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기한 게 벌써 서너 번.. '넌 아직도 골프가 취미라 생각하고 안배우는 거냐?'라는 대표님의 말 한마디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임원 6년 차였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독하게 연습했다. 매일 새벽 6시에 한 시간씩 연습하기를 3년.. 손바닥 굳은살이 세 번이나 곪아 터졌다. 골프연습은 하루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친구가 알고, 사흘 안 하면 모든 사람이 안다는 말을 되새기며 악착같이 연습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늘지를 않냐?'라는 조롱도 애써 무시했다. 이제는 별다른 연습 없이도 남에게 방해 주지 않고 골프를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막상 골프를 하니 인맥을 넓히는 데 참 좋은 운동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같이 즐길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고, 나이 차가 많이 나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민감한 정치얘기, 종교얘기, 가족얘기 빼면 무슨 주제로 대화를 하겠는가? 일 얘기를 빼고 나면 정말 대화주제가 한정적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같이 시간을 보내면 상대방의 성격도 금방 파악된다. 급한 성격인지, 배려심 있는지, 잘 삐치는지, 정직한지 말이다. 이성 간 만남도 자연스럽다. 요즘은 업무상 얘기를 나누려 해도 카페나 술집으로 가는 게 부자연스럽다. 필드에서 만나면 가벼운 업무얘기부터 개인적인 친목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특히 여성한테 꼭 필요한 스포츠이다. 인맥을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임원은 최고 경영진의 말 한마디에 운명이 바뀐다. 그래도 그 귀에 누군가는 내 얘기를 했을 것이니,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겠는가? 조직을 위해 정치하고, 골프를 미리 배워, 인맥을 더 넓혔더라면... 물론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런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배들은 임원이 되면 나처럼, 바보처럼 살지 말길 바라는 마음에 주절거렸다.
*"직장생활 승리하는 법'연재가 끝나갑니다. 주제로 다뤘으면 하는 내용을 받겠습니다. 댓글로 달아주시면 글로 정리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