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는 무조건 먹여라
오랜 진통 끝에 아기를 낳고 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무겁다. 알을 낳고 뒤집어져 버리는 물고기처럼,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은 것 같다. 당분간은 회사, 아기생각 다 버리고, 건강에만 집중하라. 산후조리는 산모가 몸을 회복하고 신생아 돌봄을 배우는 시기로, 동
양에서는 전통적인 의례로, 서양에서는 개인 자율에 맡기는 실용적인 입장이 많다. 보통 동양에서는 삼칠일, 백일문화로 100일까지를 산후조리기간으로 본다. 미역국 같은 따뜻한 음식을 먹게 하고 찬바람, 찬물, 차가운 음식은 금물이며, 심지어 며칠 동안은 샤워도 못하게 한다. 아무리 더워도 양말이나 모자를 착용하게 하고, 외출을 금지하며, 안정을 위해 대부분 누워서 지낸다. 누군가 가까이 올 때마다 냄새가 날까 봐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후조리원이 대세지만, 서양에서는 보통 1~2주 정도 집에서 휴식하고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한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기가 빠르며, 균형 잡힌 식단을 추천하되, 별도 음식 제한도 없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사회적, 의학적 배경이 달라서다. 동양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출산을 기의 소모로 인한 허약상태로 인식하여 회복기간을 중시하고, 친정과 시가의 지원을 기반으로 한 가족중심 문화가 강하다. 반면 서양은 증거기반의 의학적 관점에서 산모의 선택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산후조리 때 무엇보다 엄마 밥을 먹는 게 좋았다. 서울로 대학 가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면서 한 달여의 시간을 엄마와 같이 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아프게 아이를 낳아보니, 사 남매를 낳으신 엄마가 대단해 보였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깊이 공감되었다. 비건 엄마라 고기는 많이 안 해주셨지만, 솥밥, 미역국, 나물 같은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 정말 맛있었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엄마도 막내딸이 낳은 아기가 신기하고 귀하셨는지 매일 헝겊 기저귀를 삶으시면서도 함박웃음이셨다.
모유를 먹이든 안 먹이든, 초유는 반드시 먹여야 한다. 아기에게 매우 중요한 천연 면역 백신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출산 후 2~5일 정도까지 분비되는데, 면역력이 강화되고, 영양밀도가 높으며, 태변을 빠르게 배출하게 도와주고, 소화에도 좋다. 무엇보다 첫 모유수유는 산모와 아기의 피부접촉으로 정서적 유대형성에도 꼭 필요하다. 초유는 아기의 첫 예방주사이자, 첫 식사이자, 첫 영양제인 것이다. 모유가 잘 나오게 하려면 수분섭취와 충분한 수면, 먹는 음식이 정말 중요하다. 미역국, 보리차, 둥굴레차, 귀리, 두부, 검은콩, 호두, 아몬드, 들기름, 연어, 고등어, 참치, 찹쌀,
마늘, 생강 등 일반인이 먹어도 몸에 좋은 음식들이 모유에도 도움 된다. 커피, 녹차, 음료수, 회, 술, 너무 매운 음식, 빙수, 아이스크림 같은 찬 음식은 좋지 않다. 산모를 위한 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붉은 살코기, 계란 등의 단백질과 생강, 대추차 등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도 좋다.
아이 둘 모두를 모유로 키웠다. 큰 아이 때는 회사에 수유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착유하고, 탕비실 냉장고에 두었다가 집에 가서 먹였다. 다들 극성이라 했지만, 아이에게 평생 한 번이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텼다. 작은 아이 때는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더니, 모유가 자연스레 말라 많이 먹이질 못했다. 지금도 빼빼 마른 아들을 보면서 모유를 충분히 먹이질 못해 그런가 하고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기 낳는 일은 생명을 걸고 희생하는 일이다. 의료기술이 발달되어 예전보다는 훨씬 편하고 고통도 덜하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아기를 낳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소중해 보이고, 엄마만 보면 눈물이 난다. 모든 일에 자신감도 생기고, 무서운 게 없어진다. 많이 먹고 많이 벌어 우리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진다.
산후조리 기간만이라도 배달음식 시켜 먹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찜을 받으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라. 천사 같은 아이를 위해서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고, 참 장하다고 스스로를 톡톡 다독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