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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남편이 진짜 잘해야 한다.

by 카리스마회사선배

산 후 겪는 대표적인 감정은 기쁨과 우울이다. 총각 때와 다름없는 남편을 보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화가 치솟는다. 허벅지, 엉덩이, 배에는 흉한 튼살이 여기저기 남아있고, 분명히 아기가 빠져나갔는데도 몸무게는 그대로인 것도 당황스럽다. 백일 정도가 지나면 아기의 배냇머리와 함께 산모 머리도 우수수 빠져 버린다. 다시 나긴 하지만,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면 탈모상태가 지속된다. 목도 못 가누는 신생아를 목욕시켜야 하는데, 남편은 회식이라며 연락이 안 되거나, 거나하게 술이 취해 들어온다. 예민한 아기는 잠도 자지 않고,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는데, 신기하게도 아기 울음소리는 엄마 귀에만 들린다. 눈물이 쏟아지고, 억울한 생각에 울적해진다. 세상에 나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이 낯선 생명체 탓인 것만 같다. 돌보고 싶지도 않고, 잘 키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바로 산후우울증이다.


산후우울증은 출산여성의 10~20%가 겪는다. 출산으로 인한 변화와 책임감이 증가하고 육아에 대한 불안감과 자신감 부족, 수면부족과 피로누적이 주요한 원인이다. 분만 후 회복과정에서 오는 통증이나 불편감, 에스트로겐과 갑상선 호르몬 변화로 인한 피로감과 우울감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배우자나 가족의 도움이나 지지 부족으로 인한 고립감이다.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심각한 사건으로 번진 사례도 많으니,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일단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산모를 유심히 살펴보고 산후우울증 징후가 있을 때는 조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산모가 충분히 자고, 휴식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재의 감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공유해야 한다. 남편은 '남들 다하는 출산인데 유난스럽다.'라는 뉘앙스를 풍겨선 안된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산책이나 독서, 친구와의 만남 등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하라. 남편과 가족들이 서로 역할을 나눠 육아의 어려움을 나누고, 도우미 등을 활용하라. 인터넷 커뮤니티나 동네 또래 엄마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만약, 증상이 지속되면 전문가와 상담하여 심리치료나 필요시 약물치료도 병행하라.


아기를 낳는 일은 여성이 평생 처음 겪는 일이다. 아직 어른이 안된 것 같은데, 갑자기 책임져야 할 생명이 눈앞에 나타나면 사랑스러움보다는 두려움과 부담감만 커진다. 모든 게 서툴고 실수투성이다. 아기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왜 안 자는지도 모르겠다. 내 존재는 없어지고 아기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혼란함 속에 남편이나 가족이 배려해주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하다 결국 우울증으로 커진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태어나면 완전히 찬밥 신세다. 세상은 아기 위주로 돌아가고, 아내가 어찌나 예민하게 구는지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어진다. 그래도 힘들겠지만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자. 생명을 걸고 천사 같은 아기를 낳아주지 않았던가?


병원까지 다니진 않았으나, 첫 아이를 키울 때 나도 그랬다. 황량한 사막에 홀로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육아휴직이 출산일 포함 단 두 달밖에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마음이 더욱 조급했다. 다음날 7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 세 시까지 안 자고 빽빽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같이 엉엉 울었던 적도 많았다. 이제는 대학원생이 된 딸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아기는 밉다가 사랑스럽고, 꼴 보기 싫다가 측은해지는 그런 존재더라.


아무튼 남편이 진짜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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