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남편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밥을 차려주고 싶지도 않고, 남성으로서의 매력도 급감된다. 저녁 먹고 일찍 들어와서 육아를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까지가 더 반갑다. 심지어 스킨십 자체도 싫다. 남편은 아내가 왜 갑자기 저렇게 변했는지 충격과 서운함에 몹시 당황한다.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린 존재라 느껴지니 자꾸 저녁약속을 잡아 가급적 집에는 늦게 들어가게 된다. 출산 후 여성들은 왜 변하는 걸까?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는 신체적, 심리적, 환경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출산 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그렇다. 자연분만의 경우 6주 정도까지 통증, 출혈, 불면, 부종 등의 증상이 계속된다. 거기에 모유 수유, 수면 부족, 육아로 인한 체력소모 때문에 남편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옥시토신 등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쉽게 생긴다. 성욕감소도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는 스킨십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성은 갑자기 '엄마역할'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본능에 가깝고, 아이의 생존과 안정이 최우선과제가 된다. 아이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모든 정보검색은 아이와 관련된 것뿐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처음인지라 작은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거나, 출산이나 육아의 어려움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더 실망스럽고 멀게 느껴진다.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하지?'라는 불만이 커지면서 밉기만 하다. 출산 후 체형변화도 한몫을 한다. 탈모, 피부 트러블, 수술자국, 튼살자국 등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모습은 보기도 싫다. 여성적인 매력이 아예 없어진 것 같고, 밝은 불빛이 점점 싫어진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여성으로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동물들도 새끼를 낳은 후 짝에게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는 종들이 있다. 개, 고양이, 침팬지, 코끼리 등이 그렇다. 인간과 유전자가 98% 이상 유사한 침팬지는 출산 후 수개월동안 짝짓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수컷은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접근을 제지당하고 무시당한다. 생물학적으로 '모성본능'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육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잠자리까지 요구하면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지? 도대체 1인 몇 역을 바라는 거야?"라는 원망도 생긴다. 나도 그랬다. 필요할 때는 늦게 들어오거나, 연락도 안 됐으면서 스킨십까지 요구할 때는 정말 한 대치고 싶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갈등이 되어 결국 억지로 절충안(회당 요금제)을 마련한 적도 있다.
남편들이여, 힘들겠지만, 기다려 줘라. 아내의 감정과 기분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줘라.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주자. 얼마 지나면 육아도 익숙해지고, 외모에도 자신감이 다시 생기는 때가 온다. 그때까지 묵묵하고 든든하게 아내 결을 지켜주자. 쑥스러워도 가끔 편지나 꽃을 사다 주면서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라. 어느 순간 스르르 풀린 아내가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기댈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남편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