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극 <그날 소년 졸업하다> 공연 뒤 이야기
"마음의 거리가 짧아 오는 길이 결코 멀지 않았습니다"
진주에서 서울까지 한 걸음에 달려오신 분이 너무 고마워 손을 맞잡고 인사를 건네니 나에게 이렇게 화답한다
새벽낭독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번에 '국제가마솥나눔연맹 35주년 기념행사'에 두 분을 초대했다
국제가마솥나눔연맹은 작은 배움에서 시작되었다. 그 전신이 '가마솥에 누룽지 풍물패'다. 이름이 갖는 의미 그대로 사물놀이를 배우던 동아리 단체였다. 당시(1990년) 김덕수 사물놀이가 대학가 운동권을 중심으로 전통적 음악을 내세우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이하 '장한협') 제주도 수련회를 기점으로 서울 중앙회는 장애, 비장애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때 의견을 모은 것이 사물놀이를 배워 화합의 장을 마련하자는 거였다. 우연히 제주도 수련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나는 사물놀이 동아리 모임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사물놀이를 통해 대학가를 돌며 장애인차별철폐에 관한 간담회에 초대되어 공연을 하고 양로원, 요양원을 찾아 흥겨운 전통 음악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의 20대는 '가마솥에 누룽지 풍물패'와 더불어 여물어 갔다. 그전에 내가 알던 세상은 이제 없었다.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집안이 가난해 대학을 가지 못했던 장녀의 설움도 원망도 사라졌다. '장한협'에서 동아리 모임으로 시작된 '가마솥에 누룽지 풍물패'는 2016년 전국에 지부를 둔 '국제가마솥나눔연맹'으로 이어져 이번에 35주년 기념식을 하게 되었다
기념식 축하를 위해 공연팀이 꾸려졌다. 전통 민요팀과 사물놀이, 심청가를 비롯한 판소리, 색소폰 연주, 베트남 민속공연까지 다채롭게 꾸려졌다. 그 안에 낭독극을 넣었다. 흥겨운 음악과 춤과 노래 속에 과연 낭독극이 맞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낭독의 힘을 믿었다.
새벽낭독을 하며 인연을 맺은 주연 님, 미아 님에게 참여의사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35주년 기념식이 갖는 의미와 공연에 대해 말해주었다. 흔쾌히 함께 하고 싶다고 해주었다. 이제 낭독극 준비를 위한 대본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새벽낭독을 통해 접했던 책들이 떠올랐다. 많은 책들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35주년을 맞이한 국제가마솥나눔연맹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의 시선이 머무는 책이 보였다
박노해 시인의 자전적 에세이 <눈물 꽃 소년>이었다. 그의 시를 좋아했기에 <너의 하늘을 보아>를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편씩 낭독하고 있었는데 그의 자전적 에세이 출간 소식에 바로 구입을 하고 아껴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눈물 꽃 소년> 마지막 장에 배치되었던 <그날 소년 졸업하다>가 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래, 이거야'
대본을 만들면서 등장인물 '평이'와 '광선'이 역할이 바로 정해졌다. 평소 새벽낭독을 하면서 문장 속 대사톤을 인물에 맞춰 맛깔스럽게 표현했던 주연 님은 꼴찌 '광선'이 역할을, 의젓하면서 마음씀이 착하고 깊은 내면을 간직한 광선이 짝꿍 '평이'는 목소리 울림이 좋은 미아 님이 적격이었다. 나는 극의 전반을 이끌어 주는 내레이션을 맡기로 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만나 몇 번의 연습을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있었는데, 뭔가 조금 아쉬웠다.
낭독극에 어울리는 음악과 영상이 필요했다. 축하공연은 비디오로 제작되어 유튜브에도 올릴 예정이라 혹시 모를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아야 했다. 결국 자체제작을 하기로 하고 그동안 찍었던 영상과 AI 도움을 받아 배경영상을 만들고 무료음원 중 저작권과 상관없는 것으로 영상에 삽입했다. 이제 준비 끝이다
공연 당일, 진주에서 올라온 주연 님과 살갑게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미아 님과 리허설을 하면서 낭독극의 재미를 느끼게 하자며 손을 맞잡았다.
전국에서 회원들이 하나 둘 참석하며 성황리에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1부 축사와 공로상, 봉사상이 이어지고 2부는 뷔페식으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 3부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축복과 축하의 의미를 가진 '비나리' 공연을 시작으로 판소리 심청전의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부르며 청량한 향피리 공연이 이어졌다. 바로 그다음이 우리의 순서다.
무대 앞쪽에 의자를 배치하고 그 앞에 스탠드 마이크를 설치했다. 스크린이 내려지며 배경영상이 나오고 서서히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15분 동안 이어진 <그날 소년 졸업하다> 낭독극이 끝났다.....
하지만 낭독의 힘을 믿었던 나는 낭독극 중간중간 들려오는 사람들의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대화 소리, 아이들 뛰노는 함성소리에 '아, 망했다'를 연신 되뇌었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그나마 우리의 공연을 보려고 일부러 앞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감동스러운 공연이었다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조금 아쉬운 공연이라 함께 참여한 주연 님과 미아 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자신들은 이런 뜻깊은 공연에 참여한 게 너무 좋았다라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얼마 후 주연 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공연 후기를 올려 주었다
난다유 님은 박노해 시인의 <그날 소년 졸업하다>를 낭독극으로 준비해 주었는데 연습하다 보니 선택하신 이유를 알겠다. 여기 모임의 뜻과 아주 닮아 있음을 본다
아따, 보통 사이가 아닌 갑네잉.
보기 좋네.
인생에 좋은 친구랑 같이 가면 눈보라 길도 꽃길 아니겠는가
-그날 소년 졸업하다 중에서 '국밥 집 아줌마의 대사'
삶의 길에 좋은 동무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름다운 인생이다
작은 배움이 뜻을 품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배움이 나눔이 되었다. 진정한 앎이다.
함께 한 35년, 앞으로의 100년!
외롭지 않을, 행복한 사람들의 바람을 기원한다.
나 또한 서울 다녀오는 길이 행복했다.
낭독이 좋아 조금씩 배우고 있는 낭독으로 이 좋은 기회에 나눔이 되어 좋았다.
-주연 님 블로그 글 중에서-
이제 나는 더이상 사물놀이 공연을 하지 않는다. 처음 작은 동아리 모임으로 시작된 사물놀이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판소리, 태평소와 향피리, 색소폰과 베트남 전통 무용까지 넓혀지고 다양해졌다. 나에겐 낭독이 그 한 자리를 차지한다.
'두둥 두둥' 장구를 치며 고되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듯
이제 낭독으로 아름다운 시와 문장의 여운이
깊은 울림의 소리로 감싸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