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해금, 금이의 이야기
오늘도 구자윤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이 해금 악기를 하나씩 둘러 매고 평생교육센터를 나선다. 3년 넘게 해금강습을 꼬박꼬박 열심으로 다니고 있는 손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 호주에 사는 딸을 보러 가기에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선생님, 이번에 따님 보러 호주에 가신다면서요? 그럼 수업을 못해서 어쩌나요?"
"어머, 무슨 소리예요? 저 금이 데리고 가요?
"금이요? 금이가 누군데요?"
"해금이요 ㅎㅎ 이름이 '금이'랍니다"
"어머, 악기에 이름을 붙이셨어요?"
"네에~이 아이랑 연습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데요. '금아, 오늘 컨디션은 어떠니' '금아, 우리 신나게 연주해 보자' 하면서 쓰다듬고 만지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데리고 가려고요. 호주 가서도 매일 연습할 거예요"
우리는 선생님의 해금 사랑에 와아~탄성을 지르며 새삼 나를 반성하게 된다
어느 날, 드라마 '추노'를 보다가 해금연주곡 '비익연리'를 듣고 그만 해금 소리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목표가 생겼다. '비익연리를 꼭 해금으로 연주해 보리라' 그렇게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게 어언 몇 년이 지났는가,, 아직도 나는 동요를 지나 겨우 가요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처음의 의기충전은 점점 고꾸라지고 내려앉아 굴을 파고 있는 실정이다. 해금은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악기였다. 매번 음을 맞추지 못해 삑삑 되며 긁히는 소리에 집에서 연습하는 날이면 우리 아이들은 방문을 닫아 버린다. 그렇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한동안 강습도 신청하지 않다가 올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참에 나도 이름을 지어볼까? 반려해금으로 거듭나서 이름까지 지어 준다면 나의 해금실력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반려동물, 반려식물도 있는데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을 가진 '반려'에 해금을 슬쩍 넣어 보았다.
무생물인 해금에도 이름을 붙이면 보통의 악기에서 '나만의 소중한 악기'로 바뀌듯이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준다면 자석처럼 다가올 것 같다.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의 저자 김소영 작가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위해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딸은 죽은 듯 누워 있는 아버지를 살갑게 부르며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지난 2년간 30여 권의 책을 500여 개의 낭독파일에 담아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책 한 권의 낭독이 끝날 때마다 그 여정의 이야기를 정리해 글로 썼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기쁨과 감사의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프롤로그 중)'
대화 상대 없이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 책을 낭독하며 눈을 맞추자 아버지의 표정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딸의 목소리로 듣는 낭독의 소리는 치유의 힘으로 발휘되었다.
오늘도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물어본다. '권 여사님, 올해는 호박을 안 심으셨나요? 작년에 호박잎 따서 쪄 주셔서 잘 먹었는데요" 그러자 어머니는 "올해는 안 했다. 이제 손 가는 거 안 하고 보기 좋은 꽃만 심을란다""네네,,이번에 가면 권여사님 정원에 봉숭아 꽃이 만발하겠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김춘수 시)
우리는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가 이름을 부르자 나에게 꽃이 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