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서 1등 먹던 날
<밀리의 서재> 인문/교양 분야 1위를 찍던 날! 북 내레이터 단톡방은 축하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전문 성우가 아닌 비전문가가 우리나라 대표 오디오북 채널에서 1위(전체분야 3위)를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뒤늦게 단톡방 축하메시지를 보고 밀리의 서재에 내가 녹음한 오디오북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녹음작업을 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6개월 동안 녹음을 진행했다. 중간에 몸살감기와 씨름을 해야 했고, 더위와 추위도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538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의 책은 미리 pdf로 변환해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진행한다. 책을 보며 녹음봉사를 하던 습관 때문에 처음엔 시선처리가 쉽지 않았다. 마이크 위치도 달라져야 하기에 녹음상태를 계속 점검해야 했다. 책 넘기는 소리 대신 마우스로 다음장을 넘기는 '딸깍'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장시간 녹음으로 처음 녹음 소리와 속도와 음색이 변하지 않도록 중간에 한 번씩 녹음소리도 확인해야 한다. 녹음이 끝나면 오독을 찾아 삭제하고 재 녹음을 하면서 파열음과 숨소리, 소음 등을 찾아 편집작업을 해야 그날 녹음한 분량이 완성된다. 이렇게 열개의 파일로 제작된 17시간 짜리 오디오북 [52편의 영화로 읽는 세계문명사]가 탄생되었다.
우연히 시각장애인 녹음봉사로 낭독을 만났다. 낭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송정희 성우님을 통해 치유의 낭독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복지관 문이 닫혀 낭독을 멈춰야 하는 고민 속에 온라인 새벽낭독방을 열게 되었고 낭독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었다.
좀 더 깊이 있는 낭독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혜정낭독연구소>에서 송정희성우님과 다시 조우해 북 내레이터 과정을 이수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서혜정성우님은 성우를 꿈꿨지만 다양한 이유들로 꿈을 이루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비전문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낭독으로 북 내레이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그 중간 다리를 해 주었던 채널이 <오디오 펍>이었다.
북 내레이터로 선발이 되면 <오디오 펍>에서 제공하는 책을 녹음해 오디오북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 오디오 펍에 올라간 오디오북은 심사를 거쳐 밀리의 서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그렇게 두 권의 오디오 북이 밀리의 서재에 올라가게 되었다.
"너도 울 엄마처럼 바보냐?
뒤돌아, 나중에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
그저 바다만.... 바보처럼.
아, 우리 엄마 얘기야.
아버지 배 타다 죽고 동희 누나 물질하다 죽고
엄만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부지, 동희 누나
죽은 바다 안 볼 수 있는데.
매일 바다를 미워하면서도 바다만."
-우리들의 블루스 중-
한때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녹음 봉사로 시작된 낭독은 나를 뒤돌게 만들었다. 그저 허무하게 바다만 바라보던 시선이 등을 돌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고, 그 안에 낭독이 있었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고 한다. 그 속에는 시간대비 돈도 안 되는 걸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나는 낭독으로 독서의 재미를 알았고 책이 주는 위안을 받았고 함께 낭독하면서 친구를 만들었다.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그럼 살짝 귀띔한다. 북 내레이터로 입성하면서 난 매달 통장으로 오디오북 다운로드 수만큼 수수료를 받고 있다.
살다 보면 앞이 캄캄하고 영락없이 낭떠러지 같은 순간이 온다.
그때는 애써 앞만 보려 하지 말고, 그저 등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다. 그럼 보일 게다. 내 뒤에는 언제나, 말없이 손을 벌리고 서서 나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 평범한 진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진짜 힘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