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이 사랑방이 되는 순간
배우 박정민이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 이름이 독특하다. 제목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무제'다. 평소 그의 연기도 좋아하지만 그가 직접 낭독한 자전적 에세이 '쓸 만한 인간'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그의 매력을 또 한 번 느낀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출판사를 차리고 듣는 소설 <첫 여름, 완주>을 출간했다.
그는 듣는 소설을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 저희 아버지는 원래 시각장애인이셨거든요. 중증은 아니셨어요. 어느 날 사고가 나신 거죠.
눈이 안 좋아서 사고가 났는데 계단에 눈이 찌여서 그나마 보였던 눈이 안 보이게 되신 거죠.
그때쯤 저희 출판사 '무제'에서 '살리는 일'이라는 첫 책이 나왔는데 굉장히 공교롭더라고요.
아들이 만든 책이 나왔는데 선물을 할 수가 없다? 보실 수가 없어서.. 앞으로 이제 책을 만들면 아버지한테 어떻게 선물을 할 수 있지?
이러다가 문득 들려드리면 되지 않나? 내가 오디오북을 만들어 가장 먼저 아버지한테 들려드리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애초에 오디오북 만들 거면 그냥 읽어주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면 어떨까? 어쨌든 나는 영화 배우고 내 주변에는 그거를 도와줄 수 있는 배우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저희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눈이 불편하신 많은 분들한테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거죠.
그래 이거 뭐 나쁘지 않은 내용인 것 같다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녹음봉사를 하면서 느낀 부분 중 하나가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어 시각장애인에게 전달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중에 베스트셀러나 화제의 도서가 궁금해도 아직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지 않거나 예정이 없을 수도 있다. 박정민의 시도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른 차원으로도 바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책 읽어주는 사람, 리딩인은 직접 찾아가는 '들려주는 책 읽어주기'다. 오늘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유치원 아이들이 방문했다. 사서 선생님이 도서관은 어떤 곳이며, 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기본적인 도서관 예절에 대해 알려준다.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면 될까요?"
"아니요!!!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요?"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읽어야 해요"
두 번째로 나타나신 선생님은 바로 책 읽어주는 사람, 리딩인이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그림책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에요"
리딩인이 읽어주는 첫 번째 그림책은 <안돼, 내 과자야!>
조금 소란했던 분위기가 책 읽어주는 선생님에게 집중되며 조용해진다. 아이들이 집중하자 그림책 표지를 보여준다. 이어 속지, 제목, 내용을 차례로 읽어 주면서 중간중간 의성어, 의태어가 나오면 함께 소리 내어 크게 외치기도 한다. 리딩인은 책 속 등장인물을 표현할 때 구연동화를 하듯이 인물묘사를 하지 않는다. 자칫 선입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집중도에 따라 한 권만 읽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너무 신나게 재미있게 집중한다. 이럴 때책 읽어 주는 선생님은 뒤에 숨겨 두었던 두 번째 책을 꺼내 든다.
바로 <착한 엄마가 되어라, 얍!>이다. 그림책 속 착한 엄마와 집에 있는 자기 엄마를 비교하며 자신들의 엄마에게도 착한 엄마가 되도록 주문을 걸어야겠다며 왁자하게 웃는다.
이번에 리딩인이 방문한 곳은 노인정이다. 아파트마다 하나씩 있는 노인정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은근히 질투와 세력 다툼이 존재한다. 1년 넘게 이곳에서 리딩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은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상황에 맞는 책을 선정한다.
할머니 세 분이 소파에 앉아 있고 그 앞에 의자를 놓고 리딩인이 책을 꺼낸다. 오늘은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다.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면서 천천히 책을 읽는다. 그림책은 글밥의 비중보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히 그림을 감상하며 느낄 수 있도록 책장을 넘긴다. 책 속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이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허리 숙여 열심히 하다 정말로 허리가 굽어버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이 나은 게 너무 기뻤다. 그래서 젊은 새댁에게도 동네 꼬마들, 허수아비, 짐 소에게도 감사와 겸손의 마음으로 절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 왜 할머니가 나한테 인사를 하지?' 궁금해한다.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내용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눈물겨운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그림책 낭독이 끝나자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리딩인이 "오늘도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책 낭독을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면서 인사를 한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노인정은 말 그대로 사랑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