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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러버 Oct 16. 2023

전지적 엄마 시점

생애 첫 축구 시합

1학년이 되고 반 친구들과 축구를 배우고 있는 찬누리.

축구를 접한지 7개월만인 오늘 드디어 축구시합에 나가게 되었다. 찬누리는 축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친구들 만나 운동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었다. 축구 선구가 되겠다거나 축구 기술에 관심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을 쫓아다니는게 즐거웠을 뿐이다. 그럼에도 한 번씩 골을 넣으면 골을 넣게 된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 바빴다. 엄마에게 누나에게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도 말이다. 그렇게 신나고 즐거운 순간을 맞이했다. 

찬누리가 축구하는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다. 신중한 성격이다 보니 골 앞에서도 늘 조심스러웠다. 신나게 달려 오다가도 골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바람에 스피드를 싣지 못하고 겨우 찬 공은 굴러가 골키퍼의 밥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친구들과 몸싸움은 하면 안되는 아이다보니 축구가 아직은 어려운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하러 가는 날에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며 태권도는 빠지고 간식 먹고 영화를 보면서 2시간 넘게 잘 쉬었다가 간다. 찬누리가 즐겁게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큰 기쁨이다.

축구시합을 한다는 말에 들떠서 자기도 꼭 나갈거라기에 신청을 해 주었고, 몇 일간 계속 축구 경기 이야기를 했다. 시합 날짜가 다가오자 속마음을 숨길수가 없었는지. '엄마 근데 나 축구 하다가 넘어질거 같아. 내가 드리블은 잘 못해. 왠지 우리가 질거 같아.' 뭐 근거 없는 이런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길래, '그 날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이왕이면 좋은 생각을 해 보자. 찬누리 팀이 이길거야. 찬누리가 골을 넣을 거야. 드리블도 잘 하고 있어. 이런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훨씬 즐겁지 않아?' 하고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엄마에게 속마음을 말하는 것과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통화할 때면 축구시합 나간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시합에 와서 같이 보면 좋은데 그렇게 못해서 아쉽다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드릴테니 영상으로 자기를 보라는 말까지 놓치지 않았다.

밤에 자기 전에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랑 통화를 할 때는 또 자신만만한 찬누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런 시간들을 뒤로 하고 드디어 축구 시합의 날이 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찬누리는 세수하고 나와 바로 체육복으로 갈아 입었다. 양말까지 단정하게 신고 식탁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힘내서 열심히 뛰어야하니 아침을 챙겨 먹이려고 했다. 입맛이 없어서 안먹는다길래, 그래도 좀 먹어야 힘이 나서 달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즐겨 먹던 햄치즈 샌드위치와 우유를 챙겨 주었는데 조금 먹더니 토할거 같다며 얼굴을 붉혔다. 긴장했던 거다. 한번도 같이 뛰어 본 적이 없는 팀과 시합을 하고 부모님과 누나도 와서 본다고 하니 떨리고 긴장되었을테다. 괜히 먹였다가 탈날까봐 억지로 먹이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에 먹을 간식거리를 챙겨 들고 관문운동장으로 출발했다. 오늘 시합에 출전할 6개팀의 선수들과 그 부모님들이 벌써 와서 자리를 깔고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찬누리반 학부모님들 사이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는 분들이 많아서 반갑게 인사하고 응원준비도 같이 했다.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던지 찬누리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 모두들 주의 사항을 듣고 준비운동을 한 후, 대진표에 따라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팀과 처음만난 팀이 가장 실력이 좋은 팀이라고 했다. 찬누리가 많이 긴장하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겉보기에는 씩씩하고 용감한 모습이었다. 경기장에 들어간 이상 별다른 고민은 없어 보여서 또 웃음이 났다.


공만 쫓아다니지 않을까 했는데 8살 아이들이 제법 기술도 쓸 줄 알았다. 공에 대한 집착이 있는 선수들과 

공이 오면 한 번 차볼까 하는 선수들, 소몰이 하듯 공몰이 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웃겼지만 그들은 정말 진지했다. 절대로 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골키퍼들의 활약으로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우왕좌왕한 사이 한 골을 넣었다. 모두가 기뻐했지만 누가 넣었는지 몰랐다. 수소문한 끝에 S가 넣었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그 한 골 덕분에 우리팀이 이겼다. 누가하는 경기든 이겨야 재미있는 법이다. 아이들 경기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면서 기분 좋게 하하호호 웃어댔다. 

 

총 5번의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4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3골을 넣어 2승 2무를 기록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찬누리가 말했다. "마지막에 내가 한 골 넣을거야!" 찬누리의 말에 화이팅이라고 답해 주었다. 4번의 경기를 하는 동안 찬누리는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기에 큰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멋진 경험 중 하나고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한 골을 넣어 보겠다고 하니 열렬한 응원을 보내게 되었다. 꼭 이루어지길...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찬누리는 잘 뛰지도 않고 골을 보기만 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몸도 둔하고 공을 쫓아다니지 않으니 힘든가보다 했다. 그러던 찬누리가 골문 앞에 가 서 있었고 우연히 골이 바로 앞으로 왔다. 뻥~하고 찼으면 좋았겠지만 밀어넣듯 공을 살짝 찼는데 그게 들어갔다. 골키퍼가 골을 빼내는 바람에 골이 아닌가 하고 모두가 긴가민가 했는데 골 라인에 들어간 공을 골키퍼가 잡은거라 골이란다. 우와~~~ 찬누리의 말대로 마지막에 한골을 넣었다. 그래서 마지막 경기는 우리팀이 이겼다. 3승 2무.


6개팀중 우승팀은 4승1무를 한 팀, 찬누리반은 3승 2무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얼떨결에 한 골을 넣었지만, 축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을 넣는 것이다. 나는 찬누리가 한 말의 힘을 믿었다.

" 마지막에 내가 한 골 넣을거야!"

그 말에는 힘이 있었고, 찬누리는 말한대로 이루어졌다.


체력이 딸려서 잘 뛰지 못했지만 골문 앞에 가 서 있었다. 골이 오면 차겠다고 말이다. 공을 쫓아다니기만 해도 잘한거라고 마음 편히 즐기라고 얘기해 주었지만, 찬누리는 결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골을 넣는 즐거움을 맛보다니 이런 행운이 있나~!


돌아오는 길에 찬누리는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축구에 관심이 좀 생겼어!"

남편이랑 이 말을 듣고 빵~ 웃음이 터졌다. 

그간은 친구들이랑 놀러 다닌거였고, 이제야 축구에 찐 관심이 생겼다는 말이다. 뭐든 잘해야 재미가 있는 법이다.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축구가 재미있을 수밖에... 찬누리와 친구들 덕분에 오전 내내 신나게 웃고 응원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말에는 힘이 있고,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찬누리는 찬누리의 속도대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 그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나도 같이 성장한다. 참고 기다림, 때를 기다림, 그리고 그 때는 아이만이 알고 있다. 오롯이 아이를 인정하는 내 마음의 깊이가 깊어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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