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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Jun 14. 2020

티치아노 베첼리오

궁정화가들의 교과서와 같은 '황제 기마상'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베네치아와 신성로마제국의 경계에 위치한 피에베디카도레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베네치아로 이주해 처음에는 모자이크부터 시작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100세를 넘어섰다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는 허풍이 심해 태어난 연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장수한 화가로 피렌체나 로마와는 다른 베네치아 화풍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화가이다.


대상을 정확한 선으로 묘사해 완벽하고 이상적인 형태를 잡아내는 것에 집중했던 피렌체나 로마의 화풍에 비해, 그는 빛과 색의 완숙한 묘사에 더 치중했다. 이러한 화풍은 스승이었던 벨리니 형제로부터 배운 것이다.


세계적인 무역도시였던 베네치아를 근거지로 삼은 그는 값 비싸고 귀한 안료들을 이탈리아 내륙 지방의 화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색을 사용하는 감각이 뛰어났다. 데생으로 형태를 잡고 색을 입히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에 그는 붓으로 물감을 발라가며 자연스레 형태를 완성해내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그의 그림 솜씨는 베네치아를 넘어 유럽 각국의 군주와 귀족들에게 알려졌는데, 그가 그린 당시의 초상화만 가지고도 궁정 인물사를 한 권쯤 쓸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 한 점 없는 자는 소위 유럽 실세치곤 뭔가 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이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스페인까지 통치했던 카를 5세는 티치아노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그가 붓을 떨어뜨리자 친히 허리를 숙여 집어주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카를 5세의 기마상

<카를 5세의 기마상>은 뮐베르크에서 프로테스탄트 연합을 무찌른 황제의 위용을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을 빼고 봐도 완벽한 황혼 녁의 풍경화로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은 거친 말을 제압하는 영웅상으로 훗날 궁정화가들이 그리는 많은 '황제 기마상'의 모범이 되었다. 물론 티치아노의 기마상은 로마제국 시절 마르쿠스 아우렐라우스 황제의 기마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라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화가였던 초상화가 야콥 자이제네거가 이미 그렸던 그림을 다시 제작한 <개와 함께 있는 카를 5세>도 걸려 있는데 이 그림에 반한 황제는 티치아노에게 기사와 백작의 작위까지 수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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