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로움 Jun 18. 2020

빛과 색 감각이 뛰어난 티치아노 베첼리오

메켈란젤로에 버금가는 티치아노 <자화상>

티치아노는 100세가 되어도 질긴 고기를 뜯을 수 있다며 건강을 자랑했지만 실제로는 아흔이 못 된 나이에 당시 떠돌던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평생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유럽 실세들의 초상화를 비롯해서 신화, 종교, 역사화 등 그 모든 것에서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유럽 최고의 화가로 군림한 그는 마지막 작품으로 <자화상>을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티치아노에게 색채 감각은 뛰어나지만 제대로 된 소묘가 부족하다고 비평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정확한 선과 명료한 형태를 으뜸으로 치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내륙 화가들의 편견에 가득 찬 평가에 불과하다.


그는 사물의 표면에 닿는 빛이 그 본래의 색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해낼 줄 아는 그야말로 뛰어난 색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는 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들어오는 변신한 주피터르의 황금비는 미켈란젤로 식의 명료한 선을 거부한 채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붓질 속에서 윤곽선을 잃고 오로지 '색의 유희'로만 존재한다. 빛과 색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다나에의 침실에 놓인 커튼이나 침대보, 노파 하녀가 입고 있는 옷 등의 질감을 예의 '성긴 붓질'만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해놓고 있다. 우리 앞의 이 여인의 이름은 ‘다나에’이고,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한다. 다나에의 아버지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Acrisius)였는데, 다나에의 아들인 자신의 외손자가 자기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래서 외손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변을 원천 봉쇄하고자 딸이 아예 남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탑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주피터르(Jupiter,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탑 안에 있던 다나에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리하여 황금비로 변신한 주피터르와 다나에가 조우하게 되는데, 티치아노는 이 순간의 황금비를 금화처럼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표현했다. 주피터르와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페르세우스(Perseus)다. 다나에의 아버지는 이 모자를 광주리에 태워 바다에 던져버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페르세우스는 무사히 장성한다. 그는 여행 중 우연히 원반던지기 경기에 참여하는데, 그가 던진 원반이 경기를 관람 중이던 아크리시우스, 즉 자신의 외할아버지의 머리에 명중하여 외손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이 이루어졌다.


티치아노를 일컬어 색 감각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많은 색을 다채롭게 사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그림에서처럼 단출한 색 몇 가지만을 가지고도 다양하게 변주해 완벽한 데생만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지점들을 포착해내는 데 있다. 그는 "훌륭한 화가에게는 오직 세 가지 색, 검은색, 흰색, 빨간색만 필요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 <자화상>에서도 역시 꼼꼼하고 성실한 세부 묘사를 많이 벗어난 그의 감각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붓이 닿은 흔적이 과감하게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적당히 떨어져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형태감이 느껴진다. 뭉개진 물감층이 만들어낸 그의 수염은 손을 대면 그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전해질 듯하다. 카를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하사 받은 두 줄 목걸이는 몇 번 툭툭 찍어낸 붓질만으로 놀라우리만큼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목걸이의 찬란한 빛은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입고 있는 검은 옷은 미묘하게 그 음영을 드러내고 있어 사진보다 더한 극도의 사실감을 주고 있다.



이전 09화 티치아노 베첼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