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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Jun 22. 2020

이권을 위해서라면 근친혼 쯤이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안토니스 모르 Anthonis Mor Dashorst는 영국 체류 시절 메리 튜더 여왕의 초상을 비롯해 왕실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죽어서도 영원히 남게 되는 '흔적'으로서의 기념품, 경우에 따라서는 얼굴 한 번 못 보고 혼사를 진행하는 정략결혼을 위해 보내지곤 하던 왕실 초상화들은 사진이 없던 시절에 사진만큼 정확하되 오늘날의 사진 보정술만큼의 교묘한 '성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화가가 아무리 열심히 그렸어도 주인공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치껏'이 요구되는 왕실 초상화 작업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화가라 할지라도 손을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메리 튜더의 초상화

메리 튜더는 헨리 8세와 그의 첫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 사이에서 낳은 딸로 영국 여왕이자 펠리페 2세의 두 번째 왕비이기도 했다. 메리 튜더와 펠리페 2세는 꽤 가까운 혈족이었다. 그들의 결혼은 족보를 왕창 꼬아놓는 근친혼이었지만, 사실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가족끼리 그러면 안 돼!' 수준의 금기쯤은 이권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른여덟까지 독신을 고수하던 메리가 굳이 스물일곱의 애송이 연하남 펠리페 2세와 결혼한 것은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수준의 외교적 정략에 의한 것이었다.


<메리 튜더의 초상화>는 그녀가 펠리페와 결혼하던 해에 그려졌다. 그림 속 메리 튜더는 튜더 왕가를 상징하는 장미를 손에 든 채, 다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름답고 향도 좋긴 하지만 가시에 찔리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는 '장미'가 피의 메리에게 들려져 있으니!!!(후덜덜)


훗날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던 안토니스 모르는 프로테스탄트에 동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종교재판에 회부될 처지에 놓이자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궁정을 떠나게 되는데, 산체스 코에요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코에요의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막달레나 루이스>는 펠리페 2세의 딸 이사벨 공주와 그녀의 보모이자 궁정의 시녀이기도 했던 막달레나를 함께 그린 초상화이다.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막달레나 루이스

막달레나는 펠리페 2세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덕분에 왕이 국내외 순방을 떠날 때 수행하기도 했고 가끔은 직언을 서슴지 않아 왕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폴랑드르 화가답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하고 꼼꼼한 터치로 그려진 공주의 의상은 막달레나가 입은 검은색의 수수한 옷과 대비되면서 더욱 압도적으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이들은 서 있거나 무릎을 꿇은 자세의 차이뿐 아니라 각자의 배경이 되는 고급스러운 커튼과 칙칙한 벽으로도 대비를 이룬다.


이사벨 공주의 손에는 이 모든 부와 권력을 가능케 해준 아버지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새겨진 카메오가 들려 있다.

아버지 덕에 모든 부와 권력을 소유한 이사벨은 과연 행복했을까?

소위 말하는 다이아몬드 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이사벨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다가진 자처럼 보이긴 하지만 피와 왕권강화라는 명목하에 가진 다이아몬드 수저 왠지 뒷골이 서늘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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