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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26. 2020

클림트의 대표작<키스>

여성의 능력, 독립적 객체로서의 무한한 매력을 황금빛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를 처음 봤을 때 무척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클림트의 <키스>, 이 한 작품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을 찾는다 도대체 무엇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클림트의 <키스>

이 작품을 찬찬히 보면 꽃이 만발한 절벽 벼랑 끝에서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여자는 이에 호응하는듯 눈을 감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눈부신 황금빛 옷을 입고 있다. 남성의 옷은 직사각형의 패턴으로 강한 힘을, 여성의 옷은 꽃무늬의 원형 패턴으로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옷의 바탕색은 빛나는 황금색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바닥은 녹색과 보라색, 노란색의 화려한 꽃들이 만개해 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금박의 장식적 사용인데, 금은 신성함의 상징으로 특히 중세시대 비잔틴 양식의 종교화에서 많이 쓰였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색채에 자리를 내준 이후로는 한동안 종교화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회화에서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사라졌던 금박의 장식적 사용은 클림트에 의해 다시 회화의 재료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클림트는 금 세공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금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1903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라벤나에서 본 황금빛 비잔틴 모자이크는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했다. 클림트는 전통적인 예술 방식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당대에 가장 민감한 주제였던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화려하게 재조명한 것이다.


<키스>의 여자 주인공은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남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알마 쉰들러라고도 하는 설이 있고 어떤이는 클림트의 후원자이자 모델이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들은 클림트와 결혼하진 않았지만 그의 곁을 평생 지켰던 에밀리 플뢰게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작품에 분명히 남녀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아무래도 여성이다. 클림트는 왜 유독 여성에게 주목했을까?

그것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남성을 능가하는 독립된 객체로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빈과 유럽 사회전반에서 감지되었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이에 따른 남성들의 불편함 내지는 불안감을 직관적으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는 비록 소수지만 특별한 생각과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는 여성 문필가이자 쇼팽의 연인인 조르주 상드가 쟁쟁한 남성들로 이뤄진 상류사회에서 강력한 포스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녀의 화려한 남성 편력또한 화젯거리였다. 상드의 친구이자 고갱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은 노동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한 사회주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예술 영역에서도 여성들의 활동이 눈에 띄는데 그중에서도 인상주의에 가담한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 같은 여성 화가들은 남성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음악 분야에서는 클라라 슈만 같은 천재도 심심찮게 출현했다. 문학에서도 여성해방운동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1879년에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이 이탈리아에서 초연되었다. 후일 이 작품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과거의 낡은 인습을 탈피하고 스스로를 독립된 객체로 표현하는 여성을 가리켜 '노라'라고 칭했다. '노라'는소설의 여주인공이름으로 일명 '노라이즘'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클림트가 활동하던 당시 빈에는 희대의 여성이 빈의 상류사회를 주름잡고 있었는데 바로 알마 쉰들러였다. 그녀를 거쳐 간 남성만 해도 클림트를 시작으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극작가 프란츠 베르펠 등 각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남성들이었고 하나같이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가 그 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재능이 넘쳐나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도 뛰어났고 지적 매력도 한껏 발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없는 새로운 여성이었던 것이다.


당시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남성을 파탄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들을 '팜파탈'이라 칭했다. 한편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의 출현이 전통적인 여성상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넘어 일종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잇달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고 대학을 비롯해 여성들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남성 위주의 견고한 사회 체제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클림트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들에게 천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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