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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03. 2021

'두 번째 스무 살' -- 15화

황금 전성시대

론다에서 헤밍웨이 산책로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도 있었고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오면 사진을 찍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론다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산책을 오래 해 팔다리에 힘이 빠져서 음식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지만 부드러운 소고기가 입속에서 살살 녹았고 오렌지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떤 불청객이 우리의 식사시간을 망치긴 했지만 그래도 소고기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여정에 오를 수 있었다. 때때로 여행은 우리의 생각대로 순탄하지만은 않다. 다만 그 순탄하지 않은 순간을 빨리 겪어내고 감정이며 마음을 얼마나 빨리 추스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인해 그날의 여정을 아예 끝낼 것인지 그 상황들을 수습하고 나머지 일정을 계속할 것 인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건 어쩜 우리 인생과도 닮아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빨리 나쁜 상황을 종료시키고 다음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론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과 불청객으로 인한 불쾌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인 세비야로 향했다. 세비야는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안달루시아의 심장이라고도 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지방 중심지로 번창했던 세비야는 수세기를 걸쳐 수많은 민족들의 침입을 겪었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시기 알카사르, 히랄다의 탑 등이 세워졌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항구 도시였던 세비야는 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배를 타고 들어온 무역인들이 집시들의 플라멩코에 관심을 보이면서 세비야는 화려한 플라멩코의 본고장이 되었다. 스페인의 대표 화가 '벨라스케스', '무리요'를 배출해 내고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세비야의 이발사>와 <카르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배경이 될 정도로 세비야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포르투갈과 인접해 있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교통 중심지 중 하나이다.

세비야는 대성당과 알카사르 등 과거의 모습과 메트로폴 파라솔 등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어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값싸고 맛있는 타파스 투어를 하기에도 적당하다. 플라멩코 기타 선율에 맞춰 밤새 먹고 마시고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이다.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제일 큰 성당입니다. 원래 있었던 이슬람 모스크를 부수고 1402년 1세기에 걸쳐 완공한 대성당이에요.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으로 폭 116m, 깊이 76m의 규모입니다."


"예배당에 있는 격자무늬의 목제 제단은 세계 최대 규모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장면들을 황금으로 섬세하게 조각해 화려함을 더했어요. 예배당 안쪽으로 높은 아치가 끝나는 곳이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이고, 좌우에 알폰소 10세와 모후 베아트리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주제단 중앙에는 세비야의 수호신인 역대 왕의 성모를 모셔놓았어요. 대성당 곳곳은 프란시스코 고야,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발데스 레알 등 유명 화가의 명화로 장식을 해서 웬만한 미술관 못지않습니다."


"성당 남쪽의 산 크리스토발 문 Puerta de San Cristobal 근처에는 4대 스페인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4개의 거인상이 지키는 콜럼버스 묘가 자리 잡고 있어요. 관 안에는 콜럼버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어요. 성당 북쪽의 오렌지 중정 Patio de los Naranjos 에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는 나무 위를 보시면 '히랄다 탑'이 보여요"


<성 안토니오의 환시>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작품

"이 작품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의 작품 <성 안토니오의 환시>입니다."


"무리요는 세비야에서 태어나 세비야에서 사망했어요. 무리요는 17세기 스페인 회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기도 하죠."


"그는 고아가 되어 불운한 소년기를 보냈지만 1639년까지 후안 델 카스티뇨(Juan Del Castillo, 1590-1657) 밑에서 그림을 배워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었어요.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후안 델 카스티뇨 덕분에 세비야 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30년 동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머물며 신실한 믿음을 드러내는 많은 성화를 남겼습니다."

 

"무리요는 1649년에 <성 안토니오의 환시>를 그렸는데, 1649년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세비야 시민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현실에 직면했던 시기였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비야에 기근까지 더해, 기근으로 인해 서민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갔어요. 다행히 이러한 고난의 상황 속에서 부자와 귀족들이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예술 또한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성화가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무리요는 전염병의 공포와 지긋지긋한 가난에 지친 서민들에게 영웅적인 성인들의 일화를 통해 위안을 주고자 했어요.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은 왕이 사랑한 작품이었습니다. 왕은 급기야 무리요의 작품들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만큼 무리요의 작품은 따뜻하고 편안하고 귀하다는 의미였어요."


"바로크 그림의 대표주자로서 그는 역동적인 것보다는 오묘한 햇살이 아른거리듯 느껴지는 따뜻한 그림을 그렸어요. 바로크의 대표주자인 루벤스 그림은 뭔가 불편할 만큼 꿈틀거린다면 무리요의 그림은 평화롭고 온화한 느낌을 줍니다."

 

"세비야 대성당에 보관된 이 작품은 유명세만큼 뛰어납니다. 평생을 은둔하며 수도했던 성 안토니오 수사는 기도 중에 아기 예수님과 아기천사들을 만났고 그 장면을 무리요가 그렸어요. 자세히 보면 안토니오 주변으로 네모 모양으로 덧댄 자국이 보여요. 어느 날 무리요의 유명세를 듣고 도둑이 세비야 대성당에 찾아와 그림을 떼어서 들고 갈 생각이었는데, 그림이 6미터에 가까워서 떼다간 깔려 죽을 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둑은 주인공인 성 안토니오만 네모로 도려내었어요. 그림은 어떠한 경로로 미국에 들어갔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어요. 그렇게 돌아와 제자리에 붙였지만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성가대석

"성당 내부는 5개의 커다란 회중석이 받치고 있어요. 그 양쪽으로 작고 장식적인 르네상스,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예배당이 25개가 있어요."


"25개의 작은 예배당 Capilla은 세비야의 유력 가문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보석이나 유명화가들의 그림으로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카필라 Capilla는 사제가 없는 작은 예배당이나 개인 기도실이에요."


"7000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이 예배당을 웅장한 소리로 가득 채울 것만 같죠.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글을 모르던 성도들에게 음악으로 신앙을 고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가대석을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고 해요. 고풍스러운 성가대석에는 세비야의 역사가 조각되어 있어요."

성가대석

세비야 대성당을 들어서는 순간, '금과 은의 화려함이 이런 것이구나!' 비로소 황금과 은의 값어치를 눈으로 실감했다. 황금과 은으로 도배한 화려한 본당 위 천정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은을 세비야 대성당에 들이부었다. '그 어떤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야 한다'라고 명령을 내렸다더니, '성당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건축해야 한다'라고 했다더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고풍스러웠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의도한 대로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 20톤이나 되는 금으로 성당을 도배했으니 아름답고 빛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아름다움에 웅장함에 도취되긴 했지만 뭔지 모를 이 씁쓸함은 무엇일까!


성가대석 안쪽에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중앙 제단 Capilla Mayor   '예수 생애'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 동안 제작된 높이 27m, 폭 18m 크기의 화려한 중앙 제단, 장식은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본당 제대는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36개의 장면으로 표현했다. 성경 속 인물 189명을 금으로 장식했고 후기 고딕 양식의 목재에 채색하는 방법으로 표현했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본당의 위치를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천정 색깔이다. 사방에 황금으로 둘러싸인 금천장이 있는 곳이 본당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천장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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