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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07. 2021

'두 번째 스무 살' -- 16화

황금전성시대 2

세비야 대성당 내부 (사진작가 풍요로움)

우리 함께 사위어 갈까요 -- by 시인과 아나운서

인생로엔 열기와 냉기가 같이 흘러요


뜨거웁게 달아오르는 오르막도 

수굿이 가라앉는 내리막도 만들어요


청춘 시대를 품었던

시간의 절벽이 아찔하게 느껴질 즈음


언제인가

꼿꼿 반듯했던 허리가

세월의 가시밭길 지나

서글피 굽는 때도 오겠지요


보잘것없는 나의 등일지라도

겸손히 당신의 삶을 덥히는

가장 따뜻한 지지대로 내어드릴 기쁨


우리 함께 늙어가는 순간들은

새삼 벅찬 희망이 점등하는 때란 걸

믿으며 살아가요


그대여!

나의 어깨에 기대어

나의 허리를 휘감고


모질게 뻗어있을지 모를 세월 속 터널

새벽 별빛, 깊어진 햇살로 엮은

꽃등 하나 걸고 함께 살피어 가요


당신과 나, 두 손 잡고서

하나의 마음 붓으로 그려낼 행복의 빛 무늬


얼마나 반짝거릴까요

얼마나 향기로울까요


다시 인생 속으로 두 갈래의 길이 교차해 있어요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


당신과 함께 용기 내

가보지 않은 새날의 빗장을 열어 볼까요

콜럼버스의 묘 Sepulcro de  Colon (사진 풍요로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인 세비야는 역사, 문화에 있어서 매우 성숙한 도시입니다. 스페인 여행의 중심지로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 분주한 도시이기도 하죠. 우리에게 오페라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로 잘 알려진 세비야는 역동적인 역사를 지녔어요."


"오랜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던 세비야는 화려하고 섬세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의 기초를 제공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대항해 시대에 이곳 세비야를 출발해 대항해에 나섰던 사람이 있었어요. 누굴까요?"


"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이곳 세비야에서 출발해서 대항해를 시작했어요."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향해하면 인도에 도착할 것이라 믿고서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항해의 후원을 부탁했지만 거절을 당했어요. 그래서 스페인으로 건너와 후원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그의 항해에 관심을 갖지 않았죠.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콜럼버스는 영국, 프랑스 다른 국가에도 가서 후원자를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의 항해를 돕지 않았어요."


"콜럼버스는 본국에서 후원자를 찾기보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어요. 이때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이었던 이사벨 여왕이 해상 무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콜럼버스의 인도를 찾아 떠나는 항해에 거대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묘 (사진작가 풍요로움)

"30일 동안 바다를 건너 인도의 향신료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했지만, 70일 만에 신대륙을 찾게 된 그는 그곳이 인도가 아닌 중앙아메리카 산살바도르였어요. 그곳에서 그는 금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 금으로 인해 스페인은 황금시대를 누리게 되었죠. 이후에 늘 그렇듯이 전혀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금을 캐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어요. 더 이상 금을 얻기 힘들게 된 콜럼버스는 인디언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노예로 왕국에 바치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죽는 날까지 콜럼버스를 신임했던 이사벨 여왕이 1504년 죽게 되자,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고 있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그가 행한 악행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대신들은 그의 직위는 물론이고 재산까지 모두 빼앗았어요. 이로 인해 콜럼버스는 화병과 항해 중 얻게 된 질병으로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결국 1506년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그가 숨진 지 3년 후 유해는 세비야 주 라 카르투시아 섬 카르투시안 수도원으로 옮겨졌어요. 1537년 그의 며느리 마리아 데 로하스이 톨레도가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인 콜럼버스의 유해를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대성당으로 옮기면서 콜럼버스의 유언대로 스페인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1795년 도미니카 공화국이 프랑스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해는 다시 당시에 스페인령이었던 쿠바 아바나의 성당으로 또다시 옮겨졌어요. 이것마저도 1898년 쿠바가 독립하면서 약 400년 만에 다시 세비야로 옮겨졌어요. 죽기 전에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대륙을 넘나드는 항해를 계속하는 듯합니다."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의 묘 (사진 풍요로움)

콜럼버스의 묘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서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는 반면, 뒤에 있는 나바라, 아르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하고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이것은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인다. 그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속설을 알지 못해서,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이들의 발을 만지지는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가볼 생각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과 문화, 경관들, 건축물들을 보며 또다시 감탄할 것이고 그들의 에너지도 받아와 활기차게 사랑하며 삶을 영위할 것이다.

사진작가 풍요로움
사진 풍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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