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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14. 2021

'두 번째 스무 살' -- 19화

멋짐 폭발, "넌 나의 꽃이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정말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인다. 바다의 푸르름은 숲의 푸르름과 또 다른 마력이 있다. 옥빛이 감도는 바다에 들어가 물속 신과 조우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에 홀렸다. 땅에 붙어있는 예쁜 꽃들이 바다의 아름다움을 예고하는 예고편 같았다. 예쁜 꽃은 만개한데 난 그 멋진 장소에서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는 불청객 일행은 본격적으로 나의 진로를 막고 사진 찍는 것을 대놓고 방해했다. 

까보 다 로까 Cabo da Roca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까보 다 로까 Cabo da Roca

대한민국의 땅끝은 해남, 포르투갈의 땅끝은 호카 곶이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차에서 내리니 땅에 붙어있듯 작은 꽃들이 먼저 반겨주었다. 초록 위에 노란 꽃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예쁜 꽃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그야말로 꽃길을 걸으니 푸르른 대서양이 시야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가슴이 탁 틔였다. 간밤에 탈진상태였는데 꽃들과 바다를 마주하니 숨통이,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이다.


어느 여행객 부부의 도움으로 지사제를 먹고 뱃속이 편안해졌다. 뜨거운 물로 수분을 보충하고 각별히 음식을 주의했다. 꿀물을 마시고 약을 먹는데 약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순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쓰러질 뻔했는데 겨우 정신을 차려, 목에 걸린 약이 뜨거운 물에 녹을 수 있게 조금씩 물을 마시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불청객 노인들이 말을 걸어온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약이 목에 걸려서 숨이 안 쉬어지고 몸과 마음 컨디션이 만신창이인데 뭘 어쩌자는 것인지, 정말 잔인했다. 상대방이 어떤 상태인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이었다. 


'나이만 많이 먹으면 다야!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밤새 앓고 약 먹다 질식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뭐 하자는 거야!' 


옆에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그들을 내게서 멀찍이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다. 힘든 순간, 다행히도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약을 먹고 나니 배탈은 멈췄는데 못 자고 못 먹어서 기운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불청객 들은 포르투갈까지 와서는 같이 가자고 한다.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대응할 기력도 없어서 그들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랬더니 사진 찍는 것을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왜 저들은 저들의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남의 여행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진로를 막아서고 사진 찍는데 와서 저렇게나 알짱대는 것일까! 같이 다니기 싫다는데 말이다.'


'나만의 꽃길은 이렇게 끝나는 것인 건가!' 

'바다가 바로 코앞인데 앞길을 막는 존재들이 있다고 해서 옥빛으로 가득한 푸르른 저 바다를 향하지 못하는 것인가!' 

까보 다 로까 (땅끝마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위가 보였다. 바위로 올라서서 그들을 내발 아래 두었다. 그리고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바닷바람을 맞았다. 바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시야가 확보되어 꽃밭과 바다, 땅끝을 알리는 기념비가 더 선명히, 더 분명하게, 더 넓고 깊게 보였다. 

'그래! 이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예의와 존중을 저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라도 저들을 내 발아래 두는 수밖에!', '나이 먹었다고 상황판단을 잘하고 세상 이치를 다 깨닫고 아는 것은 아니니까!' 


바위 위에서 확보된 시야로 촬영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곳의 경치를 만끽했다. 

대서양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아니 또 다른 시작점이 되는 곳

아찔한 해안 절벽 아래로 대서양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며 더 이상 발 내딛을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날카로운 바람을 맞으며 바위 위에 우뚝 서서 십자가상의 기념비에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시인 카몽이스의 시구가 새겨져 있는 기념비를 바라보며 바람과 절벽, 붉은 등대만이 홀연히 남아 있는 호카 곶에서, 유럽 대륙 최서단에서 "넌 나의 꽃이야"라는 고백을 듣게 되다니,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대서양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사랑은 한순간에 온 세상을 금빛으로 만들고 꽃밭을 만들어 낸다. 그와 그녀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사랑뿐이다. 클림트의 <키스>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절정을 표현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이미지를 또렷하게 새겼다. 이 작품을 보는 연인은 끌리듯 키스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코 아름답고 황홀한 그림이 아닐까 싶다. 클림트의 동생 에른스트의 결혼식에서 만난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평생 정신적 사랑을 나눈 연인이었다. 클림트는 플뢰게와 4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독신으로 살면서 그의 수많은 염문으로 인해 평생 신경과민으로 고생했지만 클림트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반면, 클림트는 여성들과 헛된 사랑에 빠질 때마다 쓰라린 비애로 무너질 때마다, 플뢰게에게서 평화와 균형 그리고 우정을 발견했다고 한다. 플뢰게에게는 가혹했을 사랑이 클림트에게는 평화와 균형이었다는 이율배반적인 사랑.

대서양

It happend out of the blue!

! Ocurrio de repente!


십자가상의 기념비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어김없이 그 노인들이 따라와 막아섰다. 어디선가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나타나 그 노인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청했다. 그 노인들은 순순히 자신들의 카메라를 그에게 맡겼다. 사진을 찍은 후 그는 그 노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들! 이 사람 제 겁니다. 떨어지십시오." 그의 말 한마디에 그 노인들은 정말 순한 양처럼 순순히 떨어져 나갔다. 


이럴 수가! 그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던 가! 그동안 그는 왜 지켜보기만 한 것일까!


그 노인들도 웃긴다. 내 단호한 눈빛과 단호한 말에는 콧방귀도 안 뀌고 힘들게 하더니,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물러서다니!' 내가 그렇게 쉽게 보이고 우스웠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그대의 것이었단 말인가!'


어린 녀석이 참 대견하고 깜찍스러운 데가 있다. 얼마나 보기에 안타깝고 불편했으면 그렇게까지 나서 주었을까 싶었다. 그는 어리지만 든든한 구석이 있었다. 땅이 끝나 평화와 균형이 사라지나 싶어 아쉬웠고 두려웠다. 하지만 절벽의 공포스러운 곳에서 그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는 희망이 되어 주었다. '등대'의 작은 불빛만으로도 배들은 길을 찾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는 그런 존재였다.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시인 카몽이스의 시구가 새겨져 있는 기념비 앞, 바람과 절벽, 붉은 등대만이 홀연히 남아 있는 호카 곶에서, 유럽 대륙 최서단에서 

"넌 나의 꽃이야! 넌 내 거야!"라는 고백을 듣게 되다니,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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