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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19. 2021

정말 잘살고 싶은 마흔들을 위해

마흔도흔들린다! 생각의전환!

어릴 땐 마흔이면 엄청 어른인 줄 알았다. 옛 말대로, 마흔이면 웬만한 일에 흔들림이 없고 흔들림 없이 정해진 길을 가면 그만인 줄 알았다. 막상 마흔을 넘기고 보니 옛말이 틀렸다. TV프로의 제목처럼 '어쩌다 어른'이 된 것이다. 사회적 요구가 그랬던 것이다. 마흔이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그 통념에 끼워 맞춰 살지 않으면 엄청난 지탄을 받으니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10대는 이래야 하고 20대는 저래야 하고 30대는 가정을 이루어서 한가정의 부모, 아내, 남편, 가장, 아들, 딸, 며느리의 역할을 해야 하도록 강요되고 마치 그런 삶의 수순을 거치지 않으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듯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래서 의례적인 인사가 언제 결혼하니, 결혼하면 애는 있어야지, 애 낳으면, 애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등등 꼭 해내야 하는 숙제처럼, 해내지 않으면 교무실에 불려 가 혼나야 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이 의식들을 잘 치러낸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정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느라 친구관계나 취미생활, 심지어 자신을 들여다보고 점검할 시간조차 거의 갖지 못한 채, 생계활동과 가족관계만으로 그들의 삶을 참으로 착실하게 살아낸다. 


마흔이 되기 전, 30대 후반부터 마흔 앓이를 심하게 앓았다. 마흔은 코앞인데 이뤄놓은 결실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그 기준대로 각 나이 때에 해야 하는 중간 점검을 하는데, 그들이 정한 보편화된 시각으로 보니 나의 인생 성적표는 평균 미만이었다. 남의 집 자녀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업으로 10년 이상 살아냈는데, 사회생활을 15년 정도 했는데도 아직까지 변변한 집 한 채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성숙하게 살 수 있을까? 성숙한 마흔은 어떤 마흔을 의미하는 걸까?  마흔을 맞이한 나를 재정비해야만 했다. 그제야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했고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기존의 기준으로 바라보니, 모자란 인간이었다.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자존감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를 일으켜 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과 잣대 말고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모자란 것을 알지만 모자란 채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일단,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더 잘될 나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전반전을 얼추 마치고 후반전을 시작해야 하는데,  마흔에 진정한 내가 어떤 사람인 줄 모른다면 남은 인생 동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어영부영 살아가야 한다. 운동 경기에도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하프타임을 준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프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프타임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쉬는 시간에 제대로 쉬어주지 않으면 후반전도 전반전과 다름없이 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습관처럼 굳어진 모습과 다르게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다른 방면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낯설지만 기쁜 일이었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덮을만한 기쁨이 있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보시기엔 가진 것도 없고 집도 없는 주제에 낭비가 심하고 허황되다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다른 시선과 시야가 필요해서 하는 짓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여행으로 인해서 내 경우엔 마흔 앓이가 나아지고 개선되고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다. 그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여행을 통해, 알았지만 깨닫지 못했던 세상,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그렇게 보고 느꼈던 다른 세상을 에세이 형식의 글과 사진을 게재하면서 즐겁고 기뻤다. 왜 굳이 남의 시선에 갇혀서 사회가 말하는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왜 나는 저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냐며 미운 오리 새끼처럼 겉돌고 싶지는 않았다. 바람이긴 하지만 그들과 다른 백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고 여행을 통해서 그런 과정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책을 통해서 비슷하지만 다양한 방법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도전받으며 그들의 삶을 배우고 있다. 곧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 결과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도 한다. 어떤 일이건 새로운 도전은 4배의 노력이 들어가야 겨우 싹을 틔우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볼까 말까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 동안 독립적인 삶을 위해 4배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인생이 누구와 겨루는 운동경기는 아니지만, 후반전엔 최소한 역전승을 하거나 비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지 않다. 어쩌면 경쟁보다는 주어진 세월을 어영부영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 수 도 있다. 몸부림의 한 형태로 여행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안하지만 스릴이 넘치는 청춘의 시각으로 살아내는 삶도 필요하다. 마음은 청춘이니 말이다. 그래서 '두 번째 스무 살'이란 글도 썼다. 스무 살 때만큼 열정적인 때도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신체나이는 그렇지 않으니 이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30대까지는 그래도 청춘인 것이 체력적인 면에서 노력하면 밀리지 않는다. 막상 40대가 되어보니 그전과 같지 않은 무거움과 찌뿌둥한 신체리듬에 속상하고 피로가 회복되는 시간이 그전 같지 않아서 공연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그래 봤자 성격만 나빠지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일단,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정하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프긴 하다. 중간점검이 원하는 만큼 살아내지 못했다고 따라주지 않는 몸에게 짜증을 내봤자 도움이 안 된다. 청춘 때만큼 움직여지지 않는 머리와 몸을 다그쳐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러느라 자신과 가족 간의 사이만 나빠진다. 잘 살고자 하는 물음에도 좋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데리고 잘살아낼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하다. 시행착오는 있을지언정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 적당히 더해 균형 있는 마흔이 되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중추인 40대가 흔들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40대 고용 지표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거나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40대 취업자만 전년 동월보다 8만 4000명이 줄었다. 앞으로 20년은 더 거뜬히 일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경제 활동에 있어 휘청거리는 나이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마흔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어떤 태도를 지향해야 할까?


마흔을 맞이하고 살아간다는 건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어째 끊이지 않는 풍랑을 만난 것만 같다.  어쩌다 한 번씩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유로울 줄 알았던 지갑 사정은 돈 백 원에도 휘청거리고 사소한 일 하나로 가족끼리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나’를 다듬는 방법을 참 많이 배우고 익힌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삐걱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살고자 마음먹었다면 흔들리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달라진 신체리듬에 짜증내기보다 몸에 맞는 운동과 음식을 섭취하여 노화를 늦추고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스스로를 돌보고 자기와의 대화시간을 갖으며 남과 비교하기보다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요즘은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 오래여서 N 잡러 가 많아지고 있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인구가 줄어들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일은 아닐지라도 일자리는 줄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70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다만 몸과 마음건강, 내면을 긍정적인 것으로 채우면 우리의 걱정거리는 사실 그냥 걱정에서 그친다. 건강과 마음만 있으면 어떤 파도도 거뜬히 파도타기로 전환되어 거칠고 넘실대는 파도를 너무나 잘 타는 서퍼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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