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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13. 2021

'두 번째 스무 살' -- 18화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전시관

어떤 곳이건 올라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어도 내려오는 길은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다. 세비야의 랜드마크 '히랄다 탑'에서 내려오기가 너무 아쉬워서,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기도의 시간을 알리는 청탑)으로 세워진 이후 대성당이 세워지면서 종루와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는 곳에서 사진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최대한 많이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세비야 전망을 종루와 전망대가 설치된 곳에서 실컷 봤다. 화창한 날씨도 하늘의 구름도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맑고 환하게 나의 시선과 카메라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찍고 보니 어떤 컷도 버릴만한 것 없이 예술 작품이 되어 추억의 일부분을 장식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히랄다'라는 이름은 풍향계를 뜻하는 Giraldillo에서 유래했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세비야 대성당과 시내 전경
히랄다 탑 La Giralda

우리는 오렌지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 친구와 만나 정원을 지나 대성당의 출구인 '용서의 문'으로 나왔다. 오렌지 정원 한가운데에는 중앙 분수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손과 발을 씻었던 곳이다. 중앙 분수대는 고트족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원을 지나서 용서의 문으로 나오면 재입장이 불가능하니 나오기 전에 놓친 곳은 없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용서의 문으로 나온 우리는 각자 볼일을 보고 '세비야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행과 잠시 헤어진 후, 대성당 둘레를 걸으면서 대성당 외관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여행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세비야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꽤나 즐겁다. 한낮에 대성당 거리를 거닐며 즐기다 보니 기운이 소진되어서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동선이 겹치는 그 불청객 노인들이 또다시 신경을 건드린다. '왜 그렇게 내게 관심이 많은 걸까!'

Giralda 히랄다 탑  
세비야 대성당 출구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

스페인 광장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의 아름다움은 같은 이름을 쓰는 다른 스페인 광장들과 비교할 수 없다. 1929년 '이베로-아메리칸 lbero-American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스페인 광장은 고딕 양식의 반원형 건물과 광장, 수로, 아치형 다리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건물을 덮고 있는 화려한 타일 장식은 스페인 40개 지역의 상징들을 표현하고 있다. 


스페인 광장은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많은 영화와 CF의 촬영지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곳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미래 도시 배경으로 이곳 스페인 광장을 등장시켰고 국내 CF에서는 플라멩코를 추는 김태희의 휴대폰 광고를 촬영했던 장소이다. 또한 결혼식을 올리는 한가인의 카드사 광고도 바로 이 스페인 광장이 무대가 되었다.

스페인 광장

"이곳 스페인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1893년 산 텔모 궁전 정원의 반을 시에 기증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만들어졌어요.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 있는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요. 건물 양쪽의 탑은 대성당에 있는 히랄다 탑을 본 따서 만들었어요. 건물 아래층, 반원을 따라 타일로 장식된 곳은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려 넣었어요. "


"관광용 마차들이 모여있는 트리운포 광장을 지나오면서 말씀드렸던 담배 공장은 세비야 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요. 18세기에 지어졌는데 당시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었어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양의 시가를 생산했던 곳이죠." 


"이곳이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로 소개되면서부터예요."

스페인 광장

 "오페라 <카르멘>은 담배 공장에서 일하던 집시 여인 '카르멘'과 경비원 '돈 호세'의 사랑을 노래했어요."


"이곳 세비야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알카사르예요. 알람브라 궁전의 축소판인 알카사르 왕궁은 12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도가 지은 성채였어요. 지금은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14세기 중. 후기에 잔혹 왕으로 불리는 페드로 1세가 건설한 페드로 궁전입니다.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비슷한 채색 타일 장식과 격자 천장, 파티오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라나다 왕국의 건축가들도 세비야 알카사르 건축에 많이 참여했다는 설이 있어요. 그만큼 알람브라 궁전과 흡사합니다."


Don't throw in the towel!

! No tires la toalla!


가이드 친구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 세비야 광장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건물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에 더위를 식히고 있을 즈음, 사진을 찍어달라며 그 진상 노인들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수로에 조각배가 잡히도록 찍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서 요구대로 사진을 찍어드렸다. 카메라를 돌려주는데 느닷없이 그 노인은 "배에서 왜 그랬어?" 하며 돌변하는 것이다. 


'갑자기 무슨 배!' 

'배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 달라더니, 배에서 왜 그랬냐니!' 


그들이 전에 했던 좋지 않은 전적도 있고 무방비상태에서 일어난 상황이라서 순간 너무 놀라고 황당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서로 총을 겨누고 서서 누구 하나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방화쇠가 당겨질 것 같은 대치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진상 노인은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따라올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서 심장이 마구 뛰었지만 애써 침착해야 했다. 그 진상 노인들의 반복되는 추태로 인해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공연히 가이드 친구에게 화를 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행과 떨어져서 잠시 생각할 시간과 마음의 안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스페인 광장 맞은편에 작은 숲이 있는 공원이 있어서 그곳 벤치에 앉아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진상 노인이 왜 내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되새겨보았다.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그때가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그 일을 들추는 것인지!,  앞뒤 없이 그런 식은 아니라고 본다. 본인은 더한 말과 행동들을 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놓고, 아마도 대장 기질이 있는 모양이다. 일단, 서로의 기싸움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이 악연은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야속하게도 그토록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에서, 오페라 <카르멘>으로 유명한 바로그 곳에서, 하물며 담배 공장에서 일하던 집시 여인 '카르멘' 조차도 경비원 '돈 호세'와 사랑의 노래가 오갔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스는 없더라도 진상 노인과 이런 식의 실랑이는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비야 여정은 그렇게 황당하게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뜨거운 물에 지치고 상한 몸과 마음을 풀어내고 잠을 청하는데, 잠은 못 자고 밤새 설사를 해서 탈진상태가 되었다. 지사제도 없어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느라 밤을 꼬박 지새웠다. 좋은 일과 궂은일은 왜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것일까! 동화처럼 나의 여행도 행복한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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