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는 왜 수학여행을 거부했나

다자녀 가장이 보는 글

by 가리느까

일요일 밤, 딸내미의 다음날 등교 준비로 갑자기 부산하다.


"아빠랑 간다고 했으니 아빠 얼굴이 나와야지."


올해 중2인 딸내미는 지난 주 2박 3일 일정의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대신 보호자 동행 체험학습을 신청했는데 보고서를 쓰다가 '증빙자료'에 넣을 '증거' 사진으로 아빠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이었다.


왜 딸내미는 수학여행을 거부했을까? 때마침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한 학생이 추락사한 사건이 터졌다. 아이는 가고 없는데 학교나 호텔 측의 관리 부실 여부를 두고 여론이 떠들썩하다.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수학여행 사고사. 왜 우리는 '목숨 걸고'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가.


수학여행은 일제에 의해 1907년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학생들을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집체 교육을 통한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조직적 행동을 습득시킴으로써 한반도를 자학하고 열도를 우러르게 만드는 세뇌의 수단이었다. 2025년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목적으로 수학여행을 감행하는가.


1999년 씨랜드 화재 사고,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또다시 거론할 마음은 없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게 각성하고도 모자람이 없다고 보는데 다른 부모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내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챙겨준다는 보장만 있어도 부모는 든든할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딸내미가 초3 때 벌어진 사건이 있다. 방과 후 운동장 한 쪽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중 초1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이마가 찢어졌다. 결과적으로 종합병원 성형외과에서 열 한 바늘을 꿰맸다. 사후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두 달이 넘도록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수고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학교측은 '가해학생'의 부모와 합의하든 학교안전공제회를 통해 재해 신청을 하든 선택하라고 했다. 학교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일갈하려고 후자를 선택했고, 두 달이 넘는 치료 끝에 제출 서류상 문제로 학교를 방문했다. 그 사이 교장과 각 아이 담임은 다른 데로 전출하였고, 교감은 애먼 보건교사만 족치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느라 애썼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아이를 안전하게 잘 돌보겠다는 진심어린 사과였는데 말이다.


수학여행 자체가 사고의 원인이 되지는 않겠으나, 문제는 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교사가 말하는 '내 새끼'와 부모가 말하는 '내 새끼'는 엄연하게 다르다. 결국 내 새끼가 네 새끼냐 내 새끼냐의 차이겠지만 그 '새끼'를 대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일박이든 이박, 아니면 그 이상이든지 간에 객지에서 묵는 '박'이 문제다. 반드시 일박을 해야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그 '박'을 위해 바다를 건너야 하고, 아이들 취침 이후 교사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다. 그 열정과 무시못할 비용을 온전하게 내 가족에게 쓸 수는 없을까.


물론 일박하지 않고 내륙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무박 여행도 가능할진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모처럼 잡은 일거리에 들뜬 나머지 전날 과음 후 행삿날 버스를 벼랑으로 모는 사고를 일으킨 관광버스 기사 사례를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오늘날 행사 당일 버스기사 음주 여부를 체크하는 교사가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고2 큰아이도 올 봄에 있었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거부하고 통영 가족여행으로 대신했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2박3일의 여정을 치러냈으나 만약에 사고가 나더라도 학교측에 내 새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 최근 영접한 MZ 후배들은 회식 때도 칼같이 독단적이며 혼술, 혼밥, 혼영에 아주 능하다. 그들은 과연 학창시절 수학여행에서 친구들과 어떤 추억을 쌓았기에 그런 태도에 그토록 익숙해졌을까 싶다.


일제의 잔재인 수학여행.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가지 않는다는 그 수학여행. 목적이야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소중한 우리 아이들, 아니 소중한 남의 아이들을 사지로 몰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체험 학습 보고서 증빙 자료에 아빠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딸내미에게 항복했다. 그깟 사진에 얼굴 나오는 게 무어 그리 대수랴. 딸내미는 졸업하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르고 살 것이 뻔한 친구들보다 평생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빠와의 추억을 택했다.


아직 한 발 한 명 남았다. 초4인 막내 아이가 중2가 됐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여전히 월급쟁이로 늙어가고 있을지 파이어족이 되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도 나는 막내 아이와 함께 수학여행을 대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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