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가장의 삶에 관하여
깨똑!
'OO 님, 카드 이용금액 일부가 미납되어 알려드립니다.'
- 엥, 이게 뭔 소리지?
금쪽같은 새벽 시간 책 읽다가 확인한 메시지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며칠 전 책 사는데 '토스' 어쩌고 하고, '일반빌링' 저쩌고 하며 썰물처럼 돈이 빠져나가더니 결국 통장 잔고가 0을 찍고야 말았습니다.
입출금 내역을 보니 아내가 쓴 카드가 98만 원이 넘는 데다가 현금 인출만 20만 원씩 두 번이네요.
아침 댓바람부터 닦달할 수는 없고 걱정스럽다는 투로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알고 있어."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내는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지난번에 가계부 좀 써 가면서 살림하라고 닦달한 적이 있는데, 아내는 걸핏하면 '아이 셋'을 과소비의 이유로 댑니다.
자기 몸이 아픈 것도 아이 셋 낳은 탓, 한 달 생활비가 모자라는 것도 아이가 셋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듣고 보니 결국 또 내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 아아, 개인의 이성은 집단의 지성에 철저히 파묻히는 수밖에 없는가.
조용히 밥 먹다가도 아내와 아이들의 격한 토론 끝에는 항상 '아빠'가 원인이기 일쑤더라고요.
이쯤 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거나 투잡을 뛰거나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나, 하고 자신이 혼란스럽습니다.
그저 조용한 산채 하나 장만해서 혼자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오르네요.
또 깨똑!
'올 때 OO 마트 가서 30% 할인하는 계란 한 판 사 와요.'
이제 달걀 심부름까지 시키나 싶었지만 30%나 할인한다는데 별수 없이 아내가 시키는 대로 퇴근길 방향을 틀어 그 마트에 도착했습니다.
'1인당 한 판'
달걀이 서른 개 단위로 겹겹이 쌓여 있는 매대에 떠하니 써 붙인 문구입니다.
"저기요, 애가 다섯인데(말이 헛나왔다, 다섯 식구라고 할 것이) 두 판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단호한 마트 관계자의 말에 결국 한 판만 결제하고 나왔다가 특유의 잔머리가 발동했습니다.
잠시 후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들어간 다음 다른 카드로 한 판을 더 사서 나왔네요.
아내가 칭찬했습니다.
아내 말로는 초-중-고, 남-녀-남의 세 아이가 포진된 우리 집은 일주일 안에 달걀 한 판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사는 건지 월급이 아직도 쥐꼬리 같은지 잘 모르지만 아내의 당당함 앞에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부디 다음 달은 마이너스가 이번 달보다 플러스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